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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12% 보험료 40년 내면 국민연금으로 45%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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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국민연금 개혁의 단일안 마련에 실패했다. 대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로, 보험료를 소득의 9%에서 12%로 올리는 방안을 주요 안으로 제시할 전망이다. 또 연금 지급 국가 보장을 명문화하고, 첫째 아이 출산부터 연금 가입 기간을 늘려 주기로 합의했다. 소득대체율은 생애평균소득 대비 노후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말한다.

경사노위 내일 개혁방안 확정 #결국 더 내고 더 받는 구조 #고갈 6년 연장, 후세대 부담 여전 #현행 유지안은 소수안에 담길 듯 #2~3개안 제시해 국회로 넘겨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30일 회의를 열어 이런 방안을 확정한다. 연금특위는 지난해 10월 노동계·경영계·청년대표·공익위원 등 16명으로 참여해 연금 개혁 방안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의 의견이 엇갈려 단일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그동안 논의된 2~3개 안을 제시하되 다수안·소수안으로 표기하거나 안별로 찬성한 위원의 이름을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연금특위 다수안 요약. 김영옥 기자

경사노위 연금특위 다수안 요약.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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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논의를 종합하면 ‘소득대체율 45%-보험료 12%’ 안이 다수안, 현행 유지안(소득대체율 40%-보험료 9%)이 소수안으로 담길 가능성이 크다. 다수안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사지선다 개혁안’ 중 3안, 소수안은 1안이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소득대체율은 현행(40%)대로 내버려두고 보험료를 9%에서 10%로 1%포인트 올리는 안이 나와 있는데, 이를 소수안에 포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사노위는 30일 마지막 회의 내용을 정리해 곧 국회로 보내게 된다.  연금특위 다수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안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겠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되 보험료 증가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에서 보건복지부는 12월 사지선다 안을 내면서 3안은 소득대체율을 45%로, 4안은 50%로 올리는 안을 내놨다. 50%로 올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아 3안이 정부안으로 받아들여졌고, 이게 연금특위에서 다수안이 된 것이다.

연금 개혁은 제도의 틀을 바꾸느냐(구조개혁),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수치를 조정하느냐(모수개혁)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정부는 모수개혁을 선택했다. 이것도 역시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국민연금=용돈연금’으로 폄하될 정도로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정 안정 중시론이다. 세계 유례 없는 저출산·고령화를 견디고 후세대 부담을 줄이려면 현세대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1999, 2007년 연금개혁을 할 때 재정안정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내렸다. 60%이던 소득대체율을 2008년 50%로 낮췄고 매년 0.5%포인트 줄여 2028년에는 40%로 내려간다. 쉽게 말하면 소득이 100만원인 사람이 40년 보험료를 부으면 60만원, 50만원을 받다가 2028년에는 40만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번 연금개혁에서는 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회복하자는 데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가 추계한 결과 경사노위 다수안이 시행되면 10년 연금가입자(월 소득 100만원)의 연금이 월 2만2000원, 350만원인 사람은 3만8000원 오른다. 25년 가입하면 각각 5만5000원, 9만4000원 오른다. 보험료는 2021년부터 5년마다 1%포인트 올려 2031년 12%가 된다. 이렇게 하면 연금기금 고갈 시기가 현행 2057년에서 2063년으로 6년 늦춰진다. 얼마 늦추지 못하는 것이다.

‘45%-12%’ 안에 대해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은 “그동안 국민들이 액수가 적어서 ‘국민연금을 중심에 놓고 노후를 설계해도 될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가졌으나 소득대체율이 오르게 되면 이런 불안을 줄일 수 있게 된다”며 “국민연금이 중심에 놓이게 되면 앞으로 보험료 인상 여건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국회에서 보험료 인상에 부담을 느끼는 계층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현 제도를 내버려둬도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를 16%로 올려야 한다. 2050년이 넘으면 한국의 고령화율이 세계 최고가 되는데, 소득대체율까지 올리게 되면 후세대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을 떠안기는 것”이라며 “제도가 지속 가능해야 연금을 올리든지 할 게 아니냐”고 반박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좋은 직장을 둔 고소득 근로자가 오래 연금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많이 내서 연금을 많이 탄다. 연금 기능을 강화한다고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오히려 노후소득 양극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연금 보장성이 좋아지는 건 맞다. 하지만 평균소득 이상인 사람은 월 10만~15만원 오르고, 이하인 사람은 5만원 미만 올라간다. 노인빈곤이 심각한 문제인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방안은 이 문제를 해소하는 데 효과가 적다”며 “기초연금을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논의 결과가 국회로 가면 제대로 논의될지 의문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연금개혁을 부담스러워한다. 내년 4월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험료를 12%로 올리자”고 설득할지 미지수다. 그렇다고 야당이 나설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일부 정당에서 연금개혁안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갈음할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경제상황이 악화하는 점도 보험료 인상을 쉽지 않게 한다. 이런 점 때문에 경총이 보험료 인상에 강하게 반대했고, 경사노위에서 단일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경사노위의 한 축인 경영계가 동의하지 않은 다수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게다가 지금 경제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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