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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쌀 때 곳간 채우자” 회사채 발행 열기 뜨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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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롯데쇼핑은 29일 1%대 금리로 2800억원 상당의 회사채를 발행한다. 올 초 4000억원을 회사채로 자금 조달한 데 이어 올해만 두 번째다. 롯데쇼핑은 이번에 조달한 자금 중 1500억원은 기업어음을 갚고 나머지는 운영자금으로 쓸 예정이다.

미?중 무역분쟁에 안전자산 선호 #채권에 돈 몰리자 금리 1%대로 #지난달 16조, 1년 전보다 17% 늘어 #회사채 발행해 은행 대출 갚기도

회사 관계자는 “회사채 금리가 워낙 낮아 싼 금리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SK텔레콤이 민간기업 처음으로 3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다. 만기가 긴 채권으로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회사채 발행 월별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회사채 발행 월별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기업의 회사채 발행 열기가 뜨겁다. 지난달 국내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는 17조원어치에 달한다. 1년 전보다 17% 이상 늘었다. 미·중 무역 분쟁 속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며 안전자산 선호로 채권에 돈이 몰리면서 발행 금리가 1%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채권값이 오르면 금리는 떨어진다. 싼값에 자금을 조달해 경기둔화를 대비한 ‘실탄’을 쌓아두려는 기업까지 회사채 발행에 가세하며 발행액은 더 늘어나고 있다.

28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기업의 직접금융 조달실적’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은 회사채로 16조5202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7월은 여름 휴가철로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발행 규모가 전달(14조1832억원)보다 2조원 이상 늘었다. 1년 전 같은 기간(14조1116억원)과 비교해도 17% 이상 불어났다.

하락하는 회사채 금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락하는 회사채 금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기업이 잇따라 회사채를 발행하는 이유는 뭘까. ‘싼 금리’ 때문이다. 지난 12일 기준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는 1.52%(한국은행 자료)다. 올해 초 2.2%였던 금리가 7개월 사이 기준금리(1.5%)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기업이 은행에서 3%대 금리로 돈을 빌리는 것보다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남는 장사다.

회사채를 발행해 은행 대출을 갚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1.626~1.716% 발행금리로 5000억원 상당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 중 3000억원으로 은행에 빌린 단기차입금을 상환할 예정이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시설 투자나 상환 목적이 아닌 운영자금 확보 차원으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이 발행한 일반 회사채의 71%(4조3580억원)는 운영자금 용도였다. 더욱이 만기 1년이 넘는 중·장기채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벌어지는 무역 전쟁과 그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해 곳간을 채워두고 있는 것이다.

회사채의 몸값이 오르면서 양극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투자자가 신용등급 A- 이상의 우량 회사채로만 몰려들고 있다. 과거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고금리로 ‘완판’ 행진을 했던 BBB+ 등급의 회사채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금리 매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BBB+등급인 한진과 대한항공이 발행한 회사채는 지난달 기관투자가의 예측보다 덜 팔렸다.

회사채 인기가 오래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신환종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장은 “올 들어 기업들이 워낙 회사채를 많이 발행했기 때문에 발행 속도나 규모는 점차 줄 수 있다”며 “더욱이 투자나 상환 목적으로 발행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미 현금 유동성은 풍부하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의 박태근 글로벌채권팀장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현재 가격에 반영된 데다 공급 물량 증가에 따른 수급부담이 커지고 있어 투자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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