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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하거나 투명하거나…이런 베토벤을 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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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유, 분노, 인류애, 고통, 승리.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작품에서 수많은 감정이 뿜어져 나온다. 1770년 12월 17일 독일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그 이후의 모든 작곡가에게 우상 또는 열등감의 근원이었다. 내년은 베토벤 탄생 250년이 되는 해다. 세계의 많은 연주자와 단체가 베토벤의 언어를 다시 해석하고, 녹음하고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 이어질 전망이다.

내년 탄생 250주년, 명연주 추천 #김선욱 “바렌보임, 한 편의 드라마” #용재 오닐 “아주 자연스런 에네스” #10월엔 카잘스 4중주단 통영 공연

우리는 수많은 베토벤 음악 중 어떤 연주를 들어봐야 할까. 베토벤을 사랑하는 연주자와 평론가에게 가장 좋았던 베토벤 연주는 누구의 것이었는지 물었다. 수년 동안 베토벤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피아니스트 김선욱, 베토벤 현악4중주에 대한 책을 냈던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연주를 추천한다. KBS 클래식FM에서 ‘FM 실황음악’을 진행하는 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는 전세계 실황 연주를 리뷰하는 입장에서 연주자를 선정했다. 또 유럽의 여름 음악축제를 꾸준히 지켜봐 온 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도 베토벤 연주의 최신 경향을 소개한다.

"완벽한 논리와 드라마”

연주자·평론가 4인이 최근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연주자들을 꼽았다. 사진은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사진 ECM]

연주자·평론가 4인이 최근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연주자들을 꼽았다. 사진은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사진 ECM]

◆쉬프와 바렌보임=2008년에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를 만난 이후 많은 연주회를 찾아보고 들었다. 쉬프의 베토벤은 투명하다. 베토벤의 음악 언어를 논리적으로 과하지 않게 정제한 해석이 정말 매력적이다. 베토벤이 악보에 써넣은 페달을 완벽하게 지킬 뿐 아니라 대위법에 숨어있는 멜로디까지 전달하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선욱

김선욱

같은 해에는 런던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들었다. 쉬프가 베토벤에 분자적으로 접근한다면 바렌보임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시선으로 베토벤을 해석한다. 악보의 기호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유기적인 템포 조절로 선을 만들어냈다. 또 완벽하게 흐름을 통제하는 연주는 베토벤 음악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연주였다.

김선욱(피아니스트)

"가장 자연스러웠던 호흡”

연주자·평론가 4인이 최근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연주자들을 꼽았다. 사진은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 [사진 크레디아]

연주자·평론가 4인이 최근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연주자들을 꼽았다. 사진은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 [사진 크레디아]

리처드 용재 오닐

리처드 용재 오닐

◆에네스의 협연=지난달 미국 산타 바바라에서 런던 심포니와 지휘자 다니엘 하딩,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의 베토벤 협주곡을 들었다. 이 연주가 빼어나다 생각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휘자와 협연자의 생각과 연주가 놀랍게 일치했다는 점이다. 팀파니가 다섯 번을 두드리며 곡을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의 오케스트라 총주까지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특히 2악장에서 오케스트라 현악기들의 섬세한 연주에 실려 독주 바이올린이 하늘에 닿는 것처럼 올라가는 부분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아름다웠다. 또 바이올린 솔로 부분인 카덴차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베토벤의 하나뿐이고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이보다 좋은 연주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리스트)

"날렵한 춤곡이 된 베토벤”

연주자·평론가 4인이 최근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연주자들을 꼽았다. 사진은 카잘스 현악4중주단.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연주자·평론가 4인이 최근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연주자들을 꼽았다. 사진은 카잘스 현악4중주단.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카잘스 현악4중주단=199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창단한 카잘스 콰르텟은 창단 20주년이던 2017년부터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럽·아시아·남미 등 6번의 무대에서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을 연주하면서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후 베토벤의 현악4중주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베토벤 현악4중주로 음반을 내고 있으며 내년 세번째 음반으로 전집(16곡)을 완성할 예정이다. 멤버들은 고전주의 시대의 활을 사용해 날렵한 템포와 춤곡 같은 리듬의 맛을 살려낸다. 또 현이 떨리는 비브라토의 미묘한 뉘앙스를 잘 활용한 연주로 차별화된 베토벤을 들려준다.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유별나고 짜릿한 베토벤”

연주자·평론가 4인이 최근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연주자들을 꼽았다. 사진은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 [사진 소니 클래시컬]

연주자·평론가 4인이 최근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연주자들을 꼽았다. 사진은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 [사진 소니 클래시컬]

◆지휘자 쿠렌치스=지난해 여름 독일의 브레멘 음악축제의 개막 무대에서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그의 악단 뮤직아에테르나의 베토벤을 들었다. 급진적이고 독특한 해석으로 최근 오르는 무대와 음반마다 화제가 되는 지휘자다. 베토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향곡 6번 ‘전원’은 고요한 자연보다는 떠들썩한 풍경에 어울리는 요소가 지나칠 정도로 강렬하게 부각돼 짜릿할 정도였다. 차이콥스키, 말러 등 다른 작곡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베토벤에서도 쿠렌치스는 유별나고 독특한 포인트를 찾아냈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역동성이 좋았고 청중은 환호했다. 지휘자의 자유분방한 측면과 잘 어울리는 7번 교향곡도 함께 연주했는데 역시 새롭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베토벤 작품의 전통적 텍스트를 중시한다면 비판할 여지도 많지만 음악을 부담없이 즐기는 이들에게는 베토벤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해석이었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추천된 연주자 중 안드라스 쉬프와 카잘스 현악4중주단은 올해 한국에서 베토벤을 연주한다. 쉬프는 자신이 만든 오케스트라인 카펠라 안드레아 바르카와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3·4번을 11월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한다. 카잘스 콰르텟은 10월 1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베토벤 현악4중주 4·11번 등을 무대에 올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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