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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 음악인가

별일 많은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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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줄이 좀 이상하긴 했어요. 헐거운 느낌이 들고…. 그러더니 진짜로 끊어져버렸어요.” 첼리스트 문태국은 무대에서 브람스 소나타 2악장을 연주하던 중 첼로 줄 하나가 끊어진 적이 있다. 불과 두달 전이었다. 문제는 그 무대가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의 본선 2차였다는 점이다. 문태국은 무대 뒤로 돌아가 줄을 갈아끼우고 다시 연주해야 했고 4위에 올랐다.

바리톤 김기훈은 아예 첫 음부터 잘못된 노래도 해봤다. 지난달 체코에서 열린 오페랄리아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가 바리톤이 아닌 테너 악보를 가지고 연주하는 바람에 음이 원래보다 높았다. 김기훈은 잘못 됐다는 걸 알았지만 연주를 중단할 수 없어 높은 음에 맞춰 노래를 해야했다. 곡이 끝나고 목이 터질 것처럼 망가지고 나서야 피아니스트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결과는 2위.

올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3위를 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의 본선 무대도 희한했다. 차이콥스키 협주곡의 첫 독주 소절을 시작하자마자 객석에서 웬 사람 하나가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콩쿠르의 경쟁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다 정리되기까지 시간은 짧았지만 연주를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무대는 변수 투성이다. 특히 관심과 긴장이 최대로 올라가는 경연대회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도 벌어진다. 2005년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악기 안엔 조율 기구가 들어있었고 4년 전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경연장엔 새가 날아들었다.

악몽과도 같았을 경험에서 오직 집중력이 이들을 보호했다. 좋은 연주자에겐 훌륭한 신체조건이나 남다른 감수성이 필요하다. 각자 장점은 다르지만 이들이 예외없이 갖춘 것이 높은 수준의 집중력이다. 객석 소란 끝에도 입상한 김동현은 “연주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객만큼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던 일에 집중할 수는 있다. 불행은 그렇게 에피소드가 된다. 별별 일을 겪고도 좋은 성적을 거둔 연주자들의 교훈이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