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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조국보다는 내가 더 투명한 삶 산 것 같다”는 검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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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신의 대학 후배들에게서도 “후안무치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가 어제는 “검찰을 개혁하겠다”며 느닷없이 정책발표를 했다. “사회를 개혁하겠다”(21일), “사모펀드와 웅동학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23일)며 하루 걸러 한 번꼴로 이벤트성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 개혁 적임자는 나 뿐’ 조국 주장에 #검사들, 개혁주체 자격 놓고 의구심 확산 #조국 관련 의혹 10여 건 이미 수사 배당돼

조 후보자의 검찰 개혁안 요지는 검경수사권 조정의 법제화를 비롯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사의 공익적 역할 강화 등이다. 재산에 비례한 벌금제 도입, 국가 주도의 소송 절제 등도 포함됐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재탕·삼탕의 내용을 마치 중대 발표처럼 포장하는 그의 태도는 많은 국민에게 “과연 진정성이라고는 있는 인격일까”라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지금까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이전 정책발표를 한 사례를 본 기억이 없다. 조 후보자는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재산 문제 등으로 낙마 위기에 처한 장관 후보자들에게 “정책 발표로 위기 전환을 시도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 개혁이나 법무행정 개혁은 우리 시민 전체의 열망”이라는 조 후보자의 발표에 대해 당장 검찰 내부의 분위기는 상당히 냉소적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만으로도 장관으로서의 리더십을 상실했다” “누가 누굴 개혁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추문을 보면 내가 휠씬 더 투명한 삶을 살아왔다”거나 “그가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우리들의 인사검증을 해왔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정과 평등, 정의’라는 이 정부의 다짐과는 어느 한 구석도 일치하지 않았던 삶이 드러난 터에 문재인 대통령 국정철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항변에 가깝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권은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라며 조국 감싸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과 언론의 보도에 대해선 폄훼로 일관하더라도 대학생을 비롯한 2030의 분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조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서울대 총학생회의 첫 공식 입장 발표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 것인가. “법적인 문제가 없다며 후안무치의 태도로 일관하는 조 후보자는 법무장관이 돼선 안 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결코 조 후보자 개인에게 한정된 분노가 아닐 것이다. 서울대 커뮤니티가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에서 95%가 장관 임명에 반대한 것을 문 대통령과 집권당은 다시 한번 새겨봐야 한다. 오죽했으면 집회에서 모금된 후원금 중 남은 금액을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한다고 했겠는가.

조 후보자 측은 ‘정면돌파 의지’라며 정의당에만 매달리는 볼썽사나운 장면도 드러내고 있다. 적잖은 젊은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의당은 분노한 청년층의 좌절, 박탈감을 헤아려야 한다. 무엇보다 조국 후보자가 과연 사법개혁의 자격이 있는지 올곧은 정의의 판단을 해주길 국민들은 고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서울중앙지검이 조 후보자를 둘러싼 10여 건의 고소·고발 사건들을 형사1부에 배당했다. 설혹 법무장관으로 간다 해도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받아야 해 정상적 업무조차 불가능해진다. 국회 법사위는 다음달 2~3일 조국 청문회 일정을 잡았지만 이미 자칭 ‘사법개혁 적임자 조국’은 국민들의 마음에서 설 곳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