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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대 교수가 본 조국 딸 의혹 "명백한 스펙 위조·뻥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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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 반부패정책협의회장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조국 민정수석.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 반부패정책협의회장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조국 민정수석. [연합뉴스]

미국 예일대·스탠퍼드대 같은 명문대가 연관된 대규모 대학 입시 부정 사건이 올해 초에 발각돼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30여 명의 할리우드 스타와 부자들이 입시 컨설팅 업체를 통해 부정한 방법으로 자녀를 명문대에 보냈다.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는 여주인공 펠리시티 허프만도 명문대 입시 부정 사건에 연루됐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죠”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현실이 됐다.

이형기 서울의대 임상약리학과 교수, 『잊지 말자 황우석』저자 #조국 딸의 놀라운 스펙 쌓기 신공 # 스펙 뻥튀기와 위조는 범죄 행위 # 평등·공정·정의를 논할 자격 있나

 가장 흔하게 사용한 입시 부정은 스펙을 위조하거나 부풀리는 방법이었다. 운동선수로 뛴 적이 없는 학생을 체육특기생으로 둔갑시켰고, 수상 경력을 과장했다. 결국 부모는 기소됐고, 일부 학생은 수강 취소나 탈락 페널티를 받았다.

 서울대 학생들이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며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태윤 기자

서울대 학생들이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며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태윤 기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인 조국 서울대 교수가 청문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각종 추문에 휘말렸다. 세간의 비난은 조 후보자 딸의 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장학금 수혜 등 정황상 특혜로 의심될 만한 대우를 받았다는 의혹에 집중된다. 이 나라에서 대학은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대학 입시나 학사 처리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언제든 '봉기'할 준비가 돼 있다. 정유라가 받은 성적 특혜가 결국 박근혜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진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조 후보자 딸이 고교 시절에 보여준 스펙 쌓기 '신공'(神功)이 특히 눈길을 끈다. 기여가 없거나 미미한 논문을 2주 만에 뚝딱 쓰고 제1 저자 자리를 꿰찼다. '재택 인턴' 또는 ‘간헐적 인턴'을 시작하기도 전에 제출된 논문 초록의 저자가 됐다. 제1 저자를 제치고 외국 학회에서 발표도 했다. 고등학생은 자격이 안 된다는 국제기관의 인턴십 기회도 따냈다.
 조 후보자의 딸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 스펙이 중요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하지만 정작 조국 후보자는 "가짜뉴스"라며 반발했다. 딸의 스펙 쌓기 과정에 어떤 특혜나 암묵적 봐주기는 없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정말 그럴까.

서울대 학생들이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태윤 기자

서울대 학생들이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태윤 기자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 의대와 병원 연구실에는 자소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으려고 인턴십에 지원하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지원자 모두가 인턴십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장기 인턴이 아니라면 의학 논문의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논문의 제1 저자가 됐다면 그 학생은 이미 인턴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껏 드러난 사실만 봐도 조국 후보자 딸의 경우는 스펙 위조와 부풀리기 모두에 해당한다. 이름조차 궁색한 간헐적 인턴으로 합류하기도 전에 제출된 논문 초록의 저자가 돼 학회 발표의 영예를 얻은 것은 명백한 '스펙 위조'다. 그뿐인가. 고작 영어 번역을 도왔다고 논문의 제1 저자가 된 것은 엄청난 '스펙 뻥튀기'다.
 좋은 대학에 가려는 자녀가 스펙 쌓는 일을 돕는다고 부모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 부모의 지위나 인맥이 암묵적으로 작동해 자녀의 스펙을 부풀리고 심지어 위조까지 했다면 그것은 범죄다. 조 후보자의 딸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면 대신 합격할 수도 있었던 어느 학생은 땅을 치며 통곡해도 시원찮을 일이다. 딸의 스펙 부풀리기에 영문도 모른 채 제1저자 자리를 뺏긴 대학원생의 원통함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연합뉴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연합뉴스]

 이 모든 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 벌인 일이다. 자기 딸은 용으로 만들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면서 너희는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라”고 한다면 무엇이 기회의 평등인가. 딸의 스펙 위조와 부풀리기를 미필적 고의로 용인하면서 어떻게 과정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나. 결과가 정의롭다고? 지나던 견공(犬公)이 웃을 일이다.
이형기 서울의대 임상약리학과 교수, 『잊지 말자 황우석』저자

이형기 서울 의대 교수

이형기 서울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