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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 당한 사고로 장애 생긴 고등학생, 보험금 받게 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경영의 최소법(10)

교통사고나 의료사고 등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중앙포토]

교통사고나 의료사고 등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중앙포토]

교통사고나 의료사고 등 각종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손해배상청구는 기간의 제한 없이 장기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은 단기소멸시효 제도를 두어,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하고, 기간 내에 행사하지 않는 경우 소멸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청구, 3년 이내 행사해야  

일반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가해자, 손해의 종류·규모를 즉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행위를 당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아일 때 사고를 당했지만, 그로 인한 장애가 청소년기에 나타난 경우입니다. 권리행사 기간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손해를 배상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손해를 안 날’의 의미를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아일 때 사고를 당했지만 그로 인한 장애가 청소년기에 나타난 경우 보통 법원에서는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진 pixabay]

유아일 때 사고를 당했지만 그로 인한 장애가 청소년기에 나타난 경우 보통 법원에서는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진 pixabay]

#1. A는 만 2세 남짓 된 유아 시기에 교통사고를 당해 좌족부의 성장판에 상처를 입었다. 이후 A는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8년 1월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결과 좌족부 변형이 고정돼 상당한 후유 장해가 남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A는 보험사에 치료비 청구를 했으나, 보험사는 사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면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은 정당한 것일까.

대법원은 가해행위와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경우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안 날의 의미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잠재하고 있던 손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손해가 현실화한 것을 안 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화한 손해의 정도나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즉 막연히 손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특정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해행위가 있을 당시 피해자의 나이가 왕성하게 발육·성장 활동을 하는 때이거나, 최초 손상된 부위가 뇌나 성장판과 같이 일반적으로 발육·성장에 따라 호전 가능성이 매우 크거나 할 때와 같이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례의 경우 법원은 의학적으로 A의 뼈가 성장을 멈추는 만 18세가 될 때까지는 좌족부가 어떻게 변형될지도 모르고, 또한 뼈의 변형이 고정돼야 장해 정도 및 추가 수술 여부를 알 수 있으므로 그 이전에는 장해를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A가 장애판정을 받은 1998년 1월에 비로소 A의 좌족부 변형에 따른 후유 장해의 잔존 및 그 정도 등을 통해 비로소 손해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는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2.B는 만 15개월 무렵인 2006년 3월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약간의 발달지체 등의 증상을 보였다. 이후 계속 치료를 받아 증상이 호전되기도 했으나, 2007년 4월부터 경련이 발생하고 2008년 1월 전신경련이 발생한 이후 발달단계가 현저히 퇴행하는 양상을 보였다. B는 2012년 3월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신체 감정에서 B는 ‘치매, 주요 인지장애’의 진단을 받았다. B의 손해배상 청구는 3년이 지나서 제기됐는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하급 법원은 사고가 발생한 2006년 3월 사고로 인한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음에도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2년 3월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므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보험사의 권리소멸 인정한 1심 뒤집혀 

그러나 대법원은 사고 직후에는 언어장애나 실어증, 치매, 주요 인지장애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또한 B나 부모가 어떠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을지라도 장애의 종류나 정도는 물론 장애가 발생할지에 대해조차 확실하게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보험사의 권리소멸 주장을 배척하고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즉 막연하게 추측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인 장애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해야 합니다. 여기서 손해를 알았다는 것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손해가 현실화한 것을 안 것을 의미합니다. 불법행위가 있었지만, 손해가 뒤늦게 발생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김경영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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