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하 밥누나) ‘봄밤’으로 TV 멜로 장인이 된 배우 정해인(31)이 처음 멜로영화 주연에 나섰다. 28일 개봉하는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이다. 가수 유열이 동명 라디오 프로그램을 처음 방송한 그 날, 1994년 10월 1일 처음 만난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의 11년에 걸쳐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첫 입맞춤의 설렘, 현우의 아픈 과거가 빛과 어둠처럼 정해인의 얼굴을 오간다. 영화는 취향이 갈리더라도, 배우로서 그의 싱그러운 존재감만큼은 인상 깊다.
‘유열의 음악앨범’ 김고은과 호흡 #휴대폰 없던 시절의 엇갈린 사랑 #“저도 PC통신세대…애틋함 알죠” #드라마 ‘밥누나’보다 먼저 캐스팅
정해인으로선 ‘밥누나’를 먼저 촬영했지만, 출연이 먼저 결정된 것은 ‘유열의 음악앨범’이었다. 실제로 그가 처음 ‘선택한’ 멜로였단 얘기다.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아직 멜로를 안 해봤을 때라, 내 나이 때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다해보고 싶었다”며 “따뜻하고 서정적인 시나리오도 좋았다”고 말했다.
김고은과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짝사랑 상대인 야구선수로 호흡을 맞춘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정해인은 “고은씨와는 촬영할 때도 ‘쿵짝’이 잘 맞았다”면서 “서로 눈만 봐도 통하는 에너지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같이 누워 만화책 보는 장면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도 전했다. 김고은이 만화책을 보던 중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애드리브 연기였다. 그는 “당연히 잡아달라는 줄 알고 손을 잡았는데, 알고 보니 만화책 다 본 것 있으면 건네 달라는 의미였다”면서 “그 순간 너무 뻘쭘했지만 재미있는 기억”이라고 했다.
-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연애담이다. 시대 분위기엔 어떻게 젖어 들었나.
- “대본에 집중했다. 휴대폰이 생겨서 더 쉽게 연락하고 표현 방법도 많아졌지만, 그 시대도, 지금도 사랑하는 감정은 똑같다. 연락이 잘 끊기고 기다려야 해서 더 애틋하지 않았을까. 저도 초등학생 때 친구와 PC 통신 메일을 주고받은 기억이 생생하다(그는 1988년생이다). 5~6학년 때 e-메일 주소가 한창 유행하던 ‘1004’로 끝났다. 지금은 안 쓰지만. (웃음)”
- 라디오는 즐겨 듣나.
- “학창시절 자율학습시간에 몰래 ‘심심타파’ ‘컬투쇼’를 종종 들었다. 요즘은 이동할 때 93.1FM 클래식 채널도 자주 튼다. 음악 취향이 나이보다 ‘올드한’ 편이다. 뉴에이지·발라드를 즐겨 듣고 이문세·김광석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
- 극 중 미수는 미소 짓는 현우를 보고 “어떻게 그렇게 웃어? 진심일까, 애쓰는 게 아닐까”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환한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데, 미수의 질문에 답을 한다면.
- “마냥 밝은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비관적인 편에 가깝다. 안 된다고 생각하고 경우의 수를 따져서 플랜A·B·C·D까지 더 많이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내가 미소 짓고 웃을 땐 정말 즐거워서다. 솔직한 편이어서 억지로 웃으면 얼굴이 떨린다.”
- 인간 정해인과 현우의 닮은 점은.
- “두 남자 다 유머러스한 편은 아니고, 진취적인 건 비슷하다. 어떻게든 노력해서 상황을 이겨내려고 한다. 그래도 현우처럼 혼자 끙끙 앓는 타입은 아니다. 나는 가족한테 많이 의지한다. 일곱 살 터울 남동생과 둘도 없는 친구다. 아버지와 아무 말 없이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밖에선 배우 정해인이지만 집에 가면 엄마·아빠의 평범한 아들이란 사실만으로 충분히 위로받는다.”
- 두 편의 멜로 ‘밥누나’‘봄밤’을 함께한 안판석 PD와 이번 영화 정지우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비교하면.
- “카메라 앵글 속에 소신과 철학을 담는다는 점에서 두 분이 비슷하다. 정 감독님도 안 감독님을 좋아하시기에 직접 만남을 주선한 적도 있다. 두 분과 LP 바에서 술 한잔하면서 너무너무 좋았다.”
2년 전 소규모로 개봉한 저예산 사극 ‘역모-반란의 시대’를 제외하면 그에게 상업영화 주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사랑받을수록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면서 “이제는 지켜보는 대중이 더 많아졌다는 데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 자존감을 자주 언급하던데.
- “솔직히 많이 흔들린다. 이제 괜찮아졌지만, 얼마 전 면역력이 떨어져 크게 아팠다. 아프니까 연기도, 좋아했던 음식도, 가족도,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내 꿈이 건강하게 오래 연기하는 것이다. 그게 어렵단 걸 너무 잘 알고 스스로에 만족하는 순간 망가지고 무너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꾸 나를 채찍질하다 보면 자존감을 잃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더 단단하게 다잡으려 애쓴다. 안 그러면 배우는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몸이 건강하고 자기 자신을 많이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여유도 생긴다.”
차기작은 마동석·박정민 등과 함께 찍은 영화 ‘시동’이다. 그는 “열아홉 살 질풍노도 시기를 연기했지만 이번 영화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며 “‘봄밤’과 동시에 촬영했는데 내년 상반기쯤 선보이게 될 듯하다”고 밝혔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