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군의날 행사가 쪼그라들면서 배정된 예산의 절반 이상이 남아돌자 국방부가 이를 각종 위원회 등 다른 사업에 옮겨 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남북 화해 국면을 맞아 훈련이 축소됐을 때도 상황이 비슷했다. 예상에 없던 항목에 예산을 전용한 상황을 놓고 국방부가 국회 예산 권한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는 2018년 국군의날 행사에 편성된 예산 79억1000만원 중 34.4%인 27억2400만원만 사용한 것으로 결산됐다. 지난해 국군의날 행사가 계획보다 작게 치러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예산이 편성됐던 2017년까지만 해도 다음해 행사는 첨단무기 사열·열병·시가행진을 핵심으로 하는 5년 주기의 대규모 행사로 계획됐다. 그러나 이후 행사를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 나오면서 군 당국은 논의 끝에 이들 프로그램을 생략한 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소규모로 실시키로 했다. 대북 유화 국면 등에서 군의 무력 과시가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군 당국은 아예 지난 4월 시가행진·열병·분열 등을 의무규정으로 하는 5년 주기의 대규모 국군의날 행사 훈령을 손질해 이들 프로그램을 선택 사항으로 바꿔놨다.
이렇게 남은 예산은 각종 위원회로 흘러들어가거나 불용 처리됐다. 2018년 국군의날 행사에 배정된 예산 중 25%인 19억7900만원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설립’, ‘5·18진상규명위원회 시설공사’, ‘대한민국 방위사업전’, ‘국군의 날 행사 태권도시범’으로 조정·집행됐다. 그러고도 끝내 사용되지 못한 32억800만원(40.6%)은 불용 처리됐다.
지난해 각종 훈련 예산 역시 온전히 사용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미 연합 키리졸브 연습(KR) 및 독수리 훈련(FE),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UFG) 등을 위해 ‘2018년 작전상황연습 사업’ 항목으로 265억5500만원이 배정됐지만 집행률은 86.5%였다. UFG의 경우 지난해 7월 갑자기 취소가 결정되면서 약 24억의 예산 중 절반이 넘는 12억3300만원이 다른 사업으로 조정됐고, KR·FE도 기존 계획보다 기간이 축소되면서 기존 편성된 예산 16억8800만원 중 2억1700만원이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 쓰였다. 이밖에 해군 림팩·공군 레드플래그 훈련 등 해외에서 실시하는 연합훈련 예산 134억5000만원 중 19억7000만원도 전용됐다.
이런 상황도 북한 변수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군 당국은 지난해 UFG를 폐지하고, 대부분 군사 훈련을 ‘로키(low key)' 기조로 실시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 군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취지였다.
이 의원은 훈련에서 남는 예산을 국방부가 사업 목적에 맞지 않는 항목을 만들어 집행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3군사관생도 합동순항훈련’이 대표적이다. 2018년 예산을 짤 때 계획되지 않았던 해당 훈련을 위해 군사 연습·훈련 축소로 조정된 9억1400만원이 나중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이 사업은 2018년도 예산을 승인받기 위해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작전상황연습’의 사업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방부 역시 이 점을 의식해 올해는 이 사업을 작전상황연습이 아닌, ‘간부양성교육’ 항목에 편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방부가 임의로 목적에도 맞지 않는 사업을 항목으로 신설해 남는 예산으로 이를 집행하는 것은 국회의 예산 심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같은 세목 내에서 예산을 이·전용했기 때문에 법령을 어긴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