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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 팔순에 또 철창신세…"범죄인생 마침표 찍을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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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라는 별명이 붙은 조세형(81)씨가 22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절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대도'라는 별명이 붙은 조세형(81)씨가 22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절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1970~80년대 부유층 저택만을 골라 털어 ‘대도(大盜)’로 불리던 조세형(81)씨가 또다시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됐다. 전과 10범으로 1982년 체포된 이후 7번째 수감 생활이다.

22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민철기)는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조씨는 지난 6월 서울 광진구 한 다세대주택 1층에 침입해 몇 만원 수준의 금품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조사 결과 조씨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6번에 걸쳐 총 1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거나 미수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상습적으로 주거에 침입해 귀금속을 절취했다”며 “동종 범죄로 다수의 선고를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누범 기간에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 드라이버나 커터칼 등 도구를 준비하는 등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점, 피해 회복을 하지 못한 점에 비춰 엄벌에 처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만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고,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점, 고령인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조세형은 왜 유명해졌나

조세형씨가 훔친 물방울 다이아몬드. [중앙포토]

조세형씨가 훔친 물방울 다이아몬드. [중앙포토]

조씨가 유명해진 건 종합병원장, 전직 국회의원 등 유명인사의 집에서 ‘억’ 소리 날 만한 물건을 훔쳤기 때문이다. 1982년 조씨가 검거된 후 경찰이 240여점의 귀금속을 장물로 회수했다. 액수로 따지면 2억원이 넘었다. 통계청에서 물가상승률에 따른 화폐가치를 환산해보면 현재 72억50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특히 전직 국회의원 집에서는 국내 한두개 있을까 말까 한 5.75캐럿짜리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몬드를 훔쳤는데, 이는 정확한 값을 매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당시 신문은 전한다.

이에 대해 조씨는 “군사정부에 반감을 가진 언론이 부패를 드러내기 위해 나를 의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열린 자신의 재판에서 “한 집에서 현금 7000만원을 훔치거나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훔치며 화제가 됐다”며 “그 집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한 후배나 고관대작들이었다”고 말했다.

조세형은 왜 계속 범죄를 저지르나

조씨는 자신이 처음 범죄를 저지르게 된 계기를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찾았다. 그는 “저희 부모님은 생활고 때문에 4살인 저를 보육원에 맡기고 떠났다”며 “그 뒤로 부모님을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복지시설은 하나같이 가혹 행위가 있었는데, 아침마다 매 맞는 게 싫어서 보육원을 전전하다 보니 비행 청소년이 됐다”고 덧붙였다.

조씨에 따르면 그가 처음 소년원에 가게 된 건 두부 한 모를 훔쳐서였다. 조씨는 “그때부터 소년원에 드나들기 시작하며 선배들에게 범죄 기술만 익혔다”며 “그때 ‘내가 세상을 살아갈 유일한 수단은 도둑질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번에 범죄를 저지른 계기에 대해서도 조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들었다. 조씨 측 변호인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여관 주거비 50만원을 내고 나면 한 달에 겨우 14만원으로 생활을 해야 했다”며 “고령에 어려운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른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번이 그의 마지막 범행 될까

1998년 교도소에서 15년 복역 후 출소한 조세형씨. [중앙포토]

1998년 교도소에서 15년 복역 후 출소한 조세형씨. [중앙포토]

조씨는 재판부를 향해 “이 재판이 범죄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청소년기까지 합치면 40년을 옥살이했다. 교도소 사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2000년에 아들을 낳아 이제 군대에 입대한다. 아이를 생각하면 징역이 너무나 두렵다”고 말하며 훌쩍였다.

조씨가 새로운 삶을 다짐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8년 출소한 조씨는 서울 종로에 선교회를 열어 교인으로서 착실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한 대학에서 범죄 관련 특강도 하며 ‘범죄예방 전도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그의 변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일본 도쿄에서 빈집을 털다 잡혀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후 조씨의 행보는 ‘대도’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2005년 서울 마포구 한 치과의사 집에 침입한 조씨는160여만원어치 시계 등을 훔치다 적발됐고, 2009년에는 경기도 부천의 금은방에서 귀금속을 훔치다 붙잡혔다. 2013년에는 서울 강남의 고급 빌라에서 빈집을 털다 붙잡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에는 서울 용산구에서 훔친 귀금속을 다른 장물업자에게 판매한 혐의로 또 경찰에 붙잡혔다. 출소 5개월 만이었다. 이 사건으로 201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조씨는 만기 복역한 뒤 출소한 상태였다.

다만 그의 절도 수법이 더는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씨는 검찰 수사에서 “80살이 넘어 절도를 저지르게 돼 심정이 기가 막힌다”며 “체력적으로 다시는 범행을 저지르지 못할 것 같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조씨는 미리 준비한 가방에 옷을 준비해 도주 후 갈아입고,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을 주로 노리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그러나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 블랙박스에 담을 넘어오는 모습이 고스란히 포착돼 덜미를 잡혔다. 조씨를 체포한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CCTV 추적 노하우를 통해 신고가 들어온 지 6일 만에 조씨를 잡았다”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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