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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 남북 올림픽? ‘은밀하게’가 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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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대우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대우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보이콧은 재앙을 불러올 뻔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헌법 격인 ‘올림픽 헌장’ 위반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헌장 44조의 내규 조항 중 10항은 “(올림픽) 참가 철회는 헌장 위반이며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적시했다. 보이콧 후폭풍에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이 희생양이 될 수 있었단 얘기다.

IOC 전문가인 장-루프 샤펠레 로잔대 교수에게 물었더니 “보이콧은 명백한 헌장 위반”이라는 답이 왔다. 샤펠레 교수는 저서 출판기념회에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축사를 할 정도로 인정받는 전문가다. IOC 안팎 10명의 관계자 및 전문가들에게도 전화·e메일 문의를 했더니 같은 반응을 보내왔다.

한·일 관계 악화 여파로 더불어민주당 등 일각에서 꺼낸 도쿄올림픽 보이콧 카드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어이 상실’이다. 1년도 남지 않은 올림픽을, 누가 봐도 올림픽과는 무관한 이유로 보이콧하겠다는 것은 IOC의 제재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표명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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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개최에 대한 국제 스포츠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북한의 발사체 도발 퍼레이드 이전부터 그랬다. 샤펠레 교수는 “이론적으론 가능, 현실적으론 불가능”이라 못박았다. 또 “승산 없는 시도일뿐”(익명 요청 IOC 관계자) “인권 탄압국 북한에서 올림픽을? 글쎄”(로버트 리빙스톤 게임즈비드 편집장) “국내 정치인들만 이득 보는 가능성 없는 카드”(키어 래드니지 IOC 전문기자) 등의 반응이 나왔다. 평창에도 기여했던 올림픽 유치 전문 컨설턴트인 테렌스 번즈와 스트라토스 사피올리아스 정도가 그나마 “역사의 새 장을 연다는 의미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전제조건을 달았다. “정치와 올림픽을 분리하고, 은밀히 여론전을 펼쳐야 시도해볼 만하다”는 거다.

국내 일각에선 ‘야심가’ 바흐 위원장의 뚝심에 기대 2032년 남북 공동개최에 희망을 거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IOC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집단지성으로 움직인다. 곧 재선이 걸린 바흐 위원장 본인도 무리수를 둘리가 없다는 게 IOC 안팎의 분위기다.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뒤늦게나마 “보이콧은 없다”고 정리한 건 다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겠다며 도쿄올림픽에 대해 “우호와 협력의 (중략)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 것도 환영한다. 2032년 남북 올림픽을 진정 꿈꾼다면 얄팍한 국내 정치용 소란은 묻어두시라. 은밀하게 진행해야 위대한 꿈을 꿀 수 있다. 적어도 IOC의 문법에선 그렇다.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