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선판 민심조작극 ‘광대들’ 조진웅 “댓글 조작 심리 닮았죠”

중앙일보

입력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주연배우 조진웅을 1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주연배우 조진웅을 1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댓글이라도 조작해서 떨어진 지지율을 잡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 마음은 세대를 막론하고 있었겠다, 싶었죠.”

21일 개봉하는 사극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에서 풍문을 조작해 조선팔도를 뒤흔드는 광대패 리더 덕호 역에 나선 조진웅(43)의 말이다. 때는 500여 년 전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 임금(박희순)에 대해 민심이 흉흉하던 세조 말기. 조정 실세 한명회(손현주)의 명령으로 세조를 위한 미담 퍼뜨리기에 나섰던 덕호 패거리는 민초의 고통에 눈뜨고 권력에 맞선 반격에 나선다. 요즘 논란이 큰 여론조작‧가짜뉴스 소재를 조선 시대에 펼쳐낸 상상이 독특하다.
1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이야기”라면서도 “심각하기보단 재밌는 상업영화로 봐 달라”고 말했다.

21일 개봉 사극 '광대들:풍문조작단' #『세조실록』 속 기현상에 상상 더해 #조선판 여론조작 나선 광대 소동극 #조진웅 "배우는 곧 민중을 위한 광대" #'독전' '완벽한 타인' '공작' 흥행 이을까“

『세조실록』 속 초현실적 기록 토대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한 장면. 조정 실세 한명회(손현주)의 의뢰로 정권의 나팔수가 된 광대 덕호(조진웅)는 온갖 '특수효과'를 동원해 세조(박희순) 임금을 위한 미담 만들기에 나선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한 장면. 조정 실세 한명회(손현주)의 의뢰로 정권의 나팔수가 된 광대 덕호(조진웅)는 온갖 '특수효과'를 동원해 세조(박희순) 임금을 위한 미담 만들기에 나선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엔 실제 역사 기록이 토대가 됐다. 『세조실록』에 기록된 40여건 기현상이 그것. ‘세조 10년, 회암사 원각 법회 중 부처님이 현신하셨다’ ‘세조 12년, 임금께서 금강산 순행 중 땅이 진동하고 황금빛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더니 화엄경 속 담무갈보살이 1만2000 권속과 나타났다’ 등이다. 세조가 탄 가마가 지나가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정2품(지금의 장관) 벼슬을 받게 되는 일화는 실제 속리산 정이품송에 얽힌 유래다.
이런 믿기 힘든 사건들이 실은 광대들이 민심을 움직이려 ‘특수효과’로 만든 눈속임이었단 게 이 영화의 설정이다. 7년 전 팩션 사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조선 시대 금보다 귀했던 얼음 털이 작전을 그려 490만 관객을 동원한 김주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풍문조작단이 눈속임으로 만든 상서로운 현상들. 실제 '세조실록' 속 기록을 토대로 상상을 보탰다.[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풍문조작단이 눈속임으로 만든 상서로운 현상들. 실제 '세조실록' 속 기록을 토대로 상상을 보탰다.[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조진웅은 “촬영 때는 텅 비어있던 하늘에 컴퓨터그래픽(CG)을 입히니 재밌더라”며 “보통 영화에선 철저히 감추는 그런 ‘눈속임’ 과정을 우리 영화는 무대 뒤까지 다 보여주는 게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시그널' 이어 재회한 손현주 "친형 같죠" 

입담 좋은 덕호에 더해 특수효과 담당인 맏형 홍칠(고창석), 전직 무당 근덕(김슬기) 등 각기 전문분야가 다른 다섯 광대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팀워크도 중요했다. 그는 “윤박‧김슬기‧김민석씨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에너지가 넘치더라”면서 “특히 슬기씨가 다재다능해서 깜짝깜짝 놀랐다. 저도 덩달아 리액션을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돌이켰다. 또 3년 전 형사물 ‘시그널’(tvN)에 이어 원수지간으로 재회한 손현주와는 “실제 친해서 대결 케미가 잘 살았다”고 했다.

배우 손현주가 조정 실세 한명회 역을 맡았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배우 손현주가 조정 실세 한명회 역을 맡았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삶은 살아볼 만하다, '광대' 일의 목적 

이번 영화 출연 동기에 대해 그는 “딱 하나, 광대에 빠져들어서”라고 밝혔다. “‘광대가 민심의 선봉에 선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는 것이다. “광대는 천한 직업이지만 이들이 사고하고 움직이는 계기는 바로 민심, 민초의 삶에 대한 진정성”이라며 “그래서 처음엔 ‘조선공갈패’였던 영화 제목이 지금의 ‘광대들’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덕호(가운데)가 이끄는 광대패 5인방. 저마다 그림, 특수효과, 음향, 액션 등을 담당해 신출귀몰한 현상들을 '눈속임'으로 만들어낸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덕호(가운데)가 이끄는 광대패 5인방. 저마다 그림, 특수효과, 음향, 액션 등을 담당해 신출귀몰한 현상들을 '눈속임'으로 만들어낸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의 지론에 따르면, 배우는 민중을 위한 광대다. “광대라는 미천한 직업도 이런 (시대를 바꾸는) 움직임에 나서는데 우리가 삶을 막 탕진하며 살 이유가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게 광대 일의 목적이죠.”
그는 광대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10여년 전 공연했던 손튼 와일더의 연극 ‘우리 마을(Our Town)’을 기억해냈다. “당시 공연을 하며 많이 울었어요. 슬픈 내용이기도 했지만 ‘삶은 아름답다. 살아볼 만하다’는 감동이 커서요. 제가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인생영화로 꼽는 것도 그런 주제 때문이죠.”

배우로서 스스로에게도 그런 ‘인생작품’이 있을까.  

“있다.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에 있을 때 공연한 ‘바리데기’다. 무녀 바리공주 얘기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일곱 번째 딸이 죽을병에 걸린 부모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 이 작품의 의미도 ‘삶은 살아봄 직하다’였다. 어떨 땐 하루에도 살기 싫은 이유가 수백 가지씩 생기곤 하잖나. 그런데 저 같은 광대들이 이런 영화, 이런 연극을 만들면서 계속 살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소명이 크다. 그래서 댓글에 굴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인터넷 댓글도 찾아보나.  

“어쩔 수 없이 볼 때가 있다. 악플도 어마어마하다. 세월호 노란 리본 달고 다닌다고.”

덕호와 광대패가 부처의 현신 장면을 빚어내기 위한 거대한 골조를 만들고 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덕호와 광대패가 부처의 현신 장면을 빚어내기 위한 거대한 골조를 만들고 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브로맨스' 장인의 인생 멜로는…

이번 영화에서 그는 풍채가 두둑한 모습이다. “살이 쪘다고도 하시는데 원래 93~94㎏ 정도가 내 사이즈”라며 “캐릭터에 편안하게 이입하고 싶었다”고 했다. 덕호는 어떤 여심도 녹일 만큼 언변이 뛰어나단 설정이다. “우린 1분을 함께했어. 난 이 1분을 잊지 않을 거야”라는 홍콩영화 ‘아비정전’ 장국영의 유명 대사를 패러디한 장면도 나온다. “그 대사 윤박씨 시키자고 했는데 하필 저한테 하라셔서. 시사회 때 보는 데 어우, 안 어울리더라고요. 멜로는 또 200m 전방으로 가는구나, 했죠.”

조진웅은 "주인공과 악역도 배우끼리 서로 편해야 케미가 생긴다"면서 "현장에선 가급적 서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허물없이 대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조진웅은 "주인공과 악역도 배우끼리 서로 편해야 케미가 생긴다"면서 "현장에선 가급적 서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허물없이 대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는 ‘브로맨스’에 능한 배우다. 지난해 500만 안팎 관객몰이에 성공한 영화 ‘독전’ ‘공작’에서도 남자 배우들과 짝을 이뤘다. 딸 둔 아빠로 분한 코미디 ‘완벽한 타인’에서 드물게 아내와의 감정선을 연기했다. 차기작도 설경구와 호흡 맞춘 ‘퍼펙트 맨’, 배우 정진영이 연출 데뷔하는 영화 ‘클로즈 투 유’(가제) 등 남자영화다. 멜로엔 관심 없는 걸까. “엄청 하고 싶죠.” 그는 이렇게 말하며 ‘인생은 아름다워’를 잇는 ‘인생 멜로 영화’로 장르 노 주연의 ‘레옹’, 심혜진‧문성근‧이경영 주연의 ‘세상 밖으로’를 꼽았다. “그런데 멜로가 상당히 감정이 깊어요. 자칫하면 닭살만 돋아서, 함부로 못 건드리죠. 아직은 저하고 멜로 하자고 용기 내시는 감독님이 안 계시더라고요.”

아버지 이름 딴 예명, 팬레터에 힘내 

그에겐 조원준이란 본명이 따로 있다. 조진웅은 그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온 예명이다. “아버지 존함이 늘 힘을 준다”고 했다. 배우로서 소명이 흔들릴 때 마음을 다잡는 비법은 팬들의 손편지다. “안 읽고 간직했다가 방황할 때 꺼내보면 어김없이 슈퍼맨이 된 것 같아요. 아, 멍청한 생각하지 말자, 마음을 다잡죠. 설경구 선배가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팬덤을 얻은) ‘지천명 아이돌’이잖아요. 오십줄에 팬 미팅하는 배우론 대한민국 1호일 거라고. 그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하시더군요. 그 마음 십분 공감하죠.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관련기사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