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맹서의 품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판사 때부터 이순신 장군(1545~1598)을 연구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그를 ‘완벽한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저서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의 서문에서 “허점 찾기에 온갖 노력을 했으나 흠잡을 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재판하듯 ‘검증’한 그는 “사랑, 정성, 정의, 자력(自力)의 내면적 가치가 인격을 이뤘고 그 바탕에서 리더십이 만들어지고 실천됐다”는 ‘청문 보고서’를 썼다. “공무에 전념해야 할 시간을 쪼개 이순신 글쓰기를 했으니 그가 살아 이 꼴을 봤다면 틀림없이 나를 많이 나무랐을 것이다”라는 경외(敬畏)의 소회도 밝혔다.

청문회를 앞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9일 공직 지명을 받고 ‘서해맹산(誓海盟山)’이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머물 때 쓴 한시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움직이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에서 나온 말이다. 김 전 재판관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지극한 정성이자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분석했다. 그 기도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나타났다.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며 조선 수군 폐지론을 극복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구현됐다. 조류와 지형, 적의 동태, 아군의 전투 의지까지 주도면밀하게 살펴 명량해전 대승(1597년)을 거둔 이순신은 정작 “이것은 실로 천행(天幸·하늘이 도왔다)”이라고 했다.

조 후보자가 “서해맹산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 개혁, 법무부 혁신 등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한 지 10일 만에 쌓인 의혹과 이전의 언행을 견줄수록 신뢰는 무너진다.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해 이미 공직이 예견됐건만, 도대체 뭘 준비했는지 묻고 싶다. ‘무비유환’의 서생이 감히 ‘성웅(聖雄)의 맹서’를 읊었던 것인가.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