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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선 '김경수 구속' 성창호···직업 묻자 "판사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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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창호 부장판사(왼쪽)와 김경수 경남지사. [중앙포토]

성창호 부장판사(왼쪽)와 김경수 경남지사. [중앙포토]

김경수 구속한 성창호, 7개월 만에 같은 법원의 피고인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은 부당하며 인정할 수 없습니다."

법정나온 성창호·신광렬·조의연, 혐의 전면 부인

압수수색 영장에 담긴 검찰의 수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재판에 넘겨진 성창호(47·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지난 1월 댓글 조작 혐의로 김경수(52) 경남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했던 성 판사는 7개월 만에 같은 법원의 판사가 아닌 피고인으로 서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유영근)는 19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성 부장판사를 비롯해 신광렬(54·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조의연(53·사법연수원 24기) 서울북부지법 수석부장판사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성창호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무상비밀누설 등 1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성창호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무상비밀누설 등 1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성창호 "검찰 주장 모두 인정 못 해"  

공판기일엔 피고인의 출석이 의무라 세 판사 모두 양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했다.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담담한 표정으로 "판사입니다"라고 답했다. 법원행정처는 현재 세 판사를 재판 업무에서 배제했다.

성 부장판사는 이날 법정에서 발언 기회를 얻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이 사건의 기소 내용에 대해선 전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공판 진행 과정에서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는 점을 다시 밝히겠다"고 말했다.

성 부장판사를 포함한 세 판사는 2016년 4월 전직 법관이 연루된 '정운호 게이트' 법조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사건을 은폐·축소하기 위해 검찰 수사기밀과 영장재판 관련 자료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신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판사였고, 성 부장판사와 조 부장판사는 영장 업무를 전담했다.

2018년 9월 19일 신광렬 전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고등법원 부장판사)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했다. [뉴스1]

2018년 9월 19일 신광렬 전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고등법원 부장판사)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했다. [뉴스1]

성 부장판사 "김경수 구속해 기소" 검찰 "근거 없는 억측"

이날 변호인은 준비해 온 파워포인트 자료를 띄워가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했다.

성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검찰의 기소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변호인은 "이 사건은 검찰이 현직 법관을 배임 비리가 아닌 공무 수행 영장 처리 과정을 문제 삼아 기소한 초유의 사건"이라며 "(검찰의) 기소가 정당한 것인지 여러 측면에서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성 부장판사 측은 첫 재판을 앞두고 "김경수 경남지사를 구속해서 정치 기소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검찰은 "근거 없는 억측"이란 입장이다.

성 부장판사는 당시 영장 관련 내용을 신 수석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보고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상사였던 신 수석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보고한다는 사실 자체를 말한 바가 없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영장 보고는 통상업무, 법원행정처 전달 몰랐다"

성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이날 "영장판사들이 행정처 보고에 관여할 동기나 이유가 전혀 없다"고 덧붙이며 "당시 영장 보고는 사법행정상 이뤄진 통상적 업무의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정운호 게이트 관련 보고가 그 전의 중요사건 영장 처리 보고와 전혀 다르지 않다"며 "다만 현직 법관 연루 의혹이 있어 수석부장 요청으로 좀 더 상세히 보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신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진술 기회가 주어지자 "저는 당시 사법행정업무를 담당한 형사수석부장 판사로서 직무상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수행했다 생각한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행정처는 법원 내부기관으로 공무상 비밀누설 아냐"

이날 법정에 출석한 세 판사의 변호인들은 검찰의 기소가 법리적으로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가 성립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서인 중앙지법이 사법행정부서인 법원행정처에게 '사법행정상 필요'에 의해 정보를 전달한 것이나, 영장전담판사가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영장처리 내용을 보고한 것은 직무수행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또 외부기관이 아닌 법원의 내부기관인 법원행정처에 영장 내용을 보고한 것은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혐의를 인정하지도 않고 검찰의 기소도 법리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이다.

변호인들은 공무상 비밀누설죄가 성립하려면 누설 행위로 국가 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보고가 검찰의 수사기능이나 법원의 재판기능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검찰은 기밀이었던 수사 관련 내용이 법원행정처에 보고되며 수사 과정에 큰 저해가 초래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관여한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관여한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주장은 철회

한편 변호인들은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며 재판부가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철회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찰이 피고인을 기소하며 법원에 제출하는 공소장에 사건에 관해 법관이 유죄를 예단할 내용이 담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뜻한다.

앞서 재판부는 공소장 일본주의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점에 대해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재판 전략을 세워달라"고 양측에 요청한 바 있다.

변호인들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주장을 철회하자 재판부는 "여전히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법리나 기존 판례에 비춰봤을 때 피고인들이 그 주장을 계속하지 않는데 재판부가 굳이 직권으로 공소기각 판결을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다"고 관련 쟁점을 일단락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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