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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억류 이란 유조선 출항…EU 비협조로 체면 구긴 美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4일 지브롤터에 억류된 이란 초대형 유조선이 18일(현지시간) 밤 출항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4일 지브롤터에 억류된 이란 초대형 유조선이 18일(현지시간) 밤 출항했다. [AP=연합뉴스]

 영국 자치령 지브롤터가 억류했던 이란 초대형 유조선이 풀려나 항해를 시작했다. ‘그레이스 1호’였던 이름을 ‘아드리안 다르야 1호'로 바꿔 달았다. 미국이 이 유조선을 계속 억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지브롤터 당국은 "미국의 이란 제재가 유럽연합(EU)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그레이스→아드리안 다르야로 이름 변경 #지브롤터 美 압류요청 거부하자 심야 출항 #"미국의 이란 제재, EU에 적용 안 되고 # 이란 혁명수비대가 테러조직도 아니다"

 18일(현지시간) 오후 11시쯤 아드리안 다르야 1호가 영국 영해를 떠나 항해를 시작한 것으로 선박 운항 정보상 나타났다고 스카이뉴스가 보도했다. 이 선박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미국 측은 이 유조선을 압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지브롤터 당국은 미국의 이란 제재가 EU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워싱턴의 요청을 받아들일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이 수비대가 이란에서 시리아로 불법적으로 원유를 반출하는데 해당 유조선을 동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레이스 1호였던 이름을 아드리안 다르야 1호로 바꿨다. [AP=연합뉴스]

그레이스 1호였던 이름을 아드리안 다르야 1호로 바꿨다. [AP=연합뉴스]

 지브롤터 당국은 성명에서 “영국 영토가 현재 속해 있는 EU는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이란의 원유 수출을 금지하는 미국의 제재는 EU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미국과 EU는 매우 다른 입장과 법적 체제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 연방법원은 이 유조선에 대한 압수영장을 지난 16일 발부했다. 미국 측은 해당 유조선이 테러조직인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루돼 있기 때문에 억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 유조선이 210만 배럴의 이란산 원류를 시리아로 운반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지브롤터가 영국 해군과 이 유조선을 억류하자 이란은 보복으로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억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한 뒤 이란에 추가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와 달리 영국과 유럽 국가들은 핵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국은 미국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의 안전을 지키는 호위연합체를 구성하는 데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브렉시트를 하지 않아 EU 소속인 데다 자국 선적 유조선을 이란으로부터 빼내 와야 하기 때문에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고 풀어주는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반대에도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걸프 해역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냈다. 그럼에도 이란 정부가 재협상을 간청하고 있지도 않고, EU 소속 국가들까지 다른 입장을 보여 이란 관련 정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닻을 올린 이란 유조선 [AP=연합뉴스]

닻을 올린 이란 유조선 [AP=연합뉴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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