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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사람 살리러 온 22명 잔혹테러···'8월 19일'에 담긴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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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은 ‘세계 인도주의의 날(WHD)’이다. 생소해 보이는 날이지만 2008년 12월 11일 당당히 유엔총회 결의로 제정한 ‘뼈대 있는’ 날이다. 인도주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기리고 격려하는 ‘축일’이면서 동시에 분쟁·전염병·기아·재해 현장에서 활동하다 목숨을 바친 의인을 추모하는 ‘인도주의 현충일’이다. 1991년 12월 유엔총회 결의로 발족한 특별기구인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UNOCHA)’은 이날을 ‘전 세계에 걸친 인도주의 노력에 경의를 표시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은 지원하는 이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날’로 규정한다.

유엔 사무총장 물망에도 올랐던 세르지우 비에이라 지 멜루 유엔 이라크 특별대표.(사진)를 포함한 22명의 유엔 인도주의 요원이 2003년 바그다드 테러로 희생되자 유엔은 그들을 추모하고 인도주의 활동가를 격려하는 세계 인도주의의 날을 제정했다. [위키피디아].

유엔 사무총장 물망에도 올랐던 세르지우 비에이라 지 멜루 유엔 이라크 특별대표.(사진)를 포함한 22명의 유엔 인도주의 요원이 2003년 바그다드 테러로 희생되자 유엔은 그들을 추모하고 인도주의 활동가를 격려하는 세계 인도주의의 날을 제정했다. [위키피디아].

2003년 테러로 숨진 인도주의 요원 22명 기려

8월 19일로 정한 배경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바로 2003년 같은 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자살 폭탄 테러가 계기이기 때문이다. 차량을 이용한 폭탄 테러는 그날 오후 16시 28분, 유엔이 이라크 본부 사무실로 쓰던 카날 호텔 앞에서 벌어졌다. 테러는 불과 닷새 전에 이 호텔에 도착해 업무를 시작한 유엔 구호 임무단을 대상으로 자행됐다.

유엔이 정한 ‘세계 인도주의의 날’ #사무총장 물망 비에이라 지 멜루 등 #2003년 구호요원 테러 희생이 계기 #인도주의 의인 추모, 활동가 격려 #활동가 사고 매년 150건 넘어 #올해 주제 여성 활동가와 그들의 헌신 #분쟁·전염병·기아·재해 여전해 #근원 제거 개발원조 한국 나서야 #19~26일 서울시민청서 기념행사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 서북부 도시 알레포에서 2016년 국제적십자회(ICRC)와 적신월사 요원들이 노인을 구조하고 있다. 분쟁 지역 인도주의 활동의 현장이다. [사진 ICRC]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 서북부 도시 알레포에서 2016년 국제적십자회(ICRC)와 적신월사 요원들이 노인을 구조하고 있다. 분쟁 지역 인도주의 활동의 현장이다. [사진 ICRC]

유엔 사무총장 물망 비에이라 지 멜루 대표 희생
당시 트럭에 실린 다량의 폭탄이 터지면서 유엔 사무총장의 이라크 특별대표인 세르지우 비에이라 지 멜루(1948~2003년)를 비롯한 22명의 유엔 구호 담당 직원과 테러범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중에는 29살의 요르단 국적 부공보관 레함 알파라가 최연소였으며, 59세의 이집트 국적 대표 비서실장 나디아 유네스가 최연장이었다. 희생자의 국적은 이라크인이 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미국이 3명, 캐나다가 2명이었으며 브라질·이집트·영국·스페인·요르단·필리핀·이란이 각각 1명이었고, 이집트·이탈리아·프랑스 3중국적자가 1명이었다.
다친 사람은 100명이 넘었다. 부상자 중에는 당시 64세였던 수단의 인권변호사이자 인도주의 활동가인 아민 메키 메다니(1939~2018년) 박사도 포함됐다. 남녀노소와 국적, 하는 일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테러리즘의 민낯이다. 남을 돕는 일이 직업인 22명의 목숨을 앗아간 자살 폭탄 공격은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이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166명 이상을 학살한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 등으로 현재 국제적으로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 된 바로 그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이라크 특별대사로 일하다 당시 바그다드에서 테러에 희생된 비에이라 지 멜루는 브라질 외교관으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유엔에서 30년 이상 일했다. 학살과 내란, 분쟁이 벌어진 캄보디아·동티모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분쟁조정과 인도주의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유엔에서 코피 아난(1938~2018년, 재임 1997~2006년) 당시 사무총장의 후계자로도 거론됐다. 비에이라 지 멜루의 가족과 지인들은 그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그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2003년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의 자살 폭탄테러로 파괴된 이라크 바그다드의 카날 호텔의 잔해를 미군 공병대가 치우고 있다. 이 호텔은 유엔 요원들의 숙소와 사무실로 이용됐는데, 유엔 인도주의 요원들을 상대로 한 폭탄 테러로 22명이 숨졌다. [위키피디아]

2003년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의 자살 폭탄테러로 파괴된 이라크 바그다드의 카날 호텔의 잔해를 미군 공병대가 치우고 있다. 이 호텔은 유엔 요원들의 숙소와 사무실로 이용됐는데, 유엔 인도주의 요원들을 상대로 한 폭탄 테러로 22명이 숨졌다. [위키피디아]

2013년 활동가 474명이 공격 당하기도

인도주의 컨설팅 그룹인 ‘휴머니태리언 아웃컴’이 펴낸 ‘구호활동가 안전 데이터베이스(AWSD)’에 따르면 1997년 이후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당한 사고 건수는 매년 증가일로다. 2006년 100건을 넘었고 2013년 역대 최다인 250건을 넘은 뒤 조금 줄고 있지만 150건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평화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474명의 구호활동가가 공격을 당해 가장 폭력적인 한해를 기록했다.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폭탄 테러, 총격, 폭격 등으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적지 않으며 납치나 강도를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도주의를 위한 활동과 활동가 지원자도 줄지 않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인도주의 펀드가 지원하는 모성보호 프로그램에서 활동 중인 여성 인도주의 요원들과 임신부의 모습; [유엔 홈페이지]

나이지리아에서 인도주의 펀드가 지원하는 모성보호 프로그램에서 활동 중인 여성 인도주의 요원들과 임신부의 모습; [유엔 홈페이지]

올해 주제는 여성 활동가들의 헌신

세계 인도주의의 날은 매년 특정 주제를 정하는데, 올해는 ‘여성 인도주의 활동가들과 세상을 더욱 낫게 만들기 위한 그들의 헌신’으로 잡았다.  UNOCHA는 지치지 않는 노력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구한 여성 인도주의 활동가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유엔 홈페이지는 “위기에 빠진 민간인을 지원하는 것부터 질병 창궐에 대응하는 것까지 여성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라는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을 앞세워 여성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있다. 무장분쟁·전염병·기아·자연재해 등 다양한 형태의 인도주의 위기 현장에서 여성 활동가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국제이주기구(IOM)의 홍보 홈페이지에 등장한 이주민의 모습.. [사진 IOM]

국제이주기구(IOM)의 홍보 홈페이지에 등장한 이주민의 모습.. [사진 IOM]

이태석 신부 활동 남수단, 전란·자연재해  

유엔 홈페이지에 따르면 여성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전쟁의 상처가 만연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식량난이 심각한 사헬까지, 중앙아프리카공화국·남수단·시리아·예멘 같이 (분쟁으로) 사람들이 집과 생계수단을 잃은 곳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헬은 중부 아프리카의 세네갈·모리타니·말리·부르키나파소·니제르·나이지리아·카메룬·차드·수단·남수단·에리트레아에 이르는 사하라 사막의 남쪽 지역이다. 사막화와 토지 황폐화로 경작지 감소와 이에 따른 식량난이 심각해 국제적인 지원 대상이 되고 있다. 동서로는 대서양에서 홍해까지 약 5400㎞에 이르고 남북으로는 약 1000㎞의 벨트다. 주목할 점은 이태석(1962~2010년) 신부가 활동했던 남수단 지역이 분쟁과 토지 황폐화를 겪는 인도주의 재앙지역에 모두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여성 활동가와 그 헌신을 기리는 세계 인도주의의 날 홍보 홈페이지 화면[사진 유엔]

여성 활동가와 그 헌신을 기리는 세계 인도주의의 날 홍보 홈페이지 화면[사진 유엔]

중동·아프리카·남아시아 여전히 취약

이태석 신부와 비에이라 지 멜루 대표를 포함한 수많은 인도주의 활동가의 활약과 헌신, 희생에도 아직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지역, 국가가 적지 않다. 인권·민주주의·성평등을 기반으로 스웨덴의 공적개발원조를 담당하는 스웨덴 국제개발협력청(SIDA)에 따르면 중동·아프리카·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인도주의 위기가 여전히 만연하다. SIDA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남수단·콩고민주공화국·소말리아와 올해 한국인 피랍 사건이 발생했던 사하라 남부 차드·니제르·말리 지역이 포함됐다. 주민들은 무장 분쟁과 식량 부족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카메룬과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도 포함됐다. 에티오피아는 무장분쟁은 없지만 기후변화 등에 따른 식량 부족과 난민으로 힘든 상황이다.

피터 마우어 국제적십자회(ICRC) 총재(왼쪽)가 지난 4월 9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오른쪽)과 만나 인도주의 지원을 논의하고 있다. 두 사람의 뒷쪽에 베네수엘라 국기(왠쪽)와 ICRC 깃발(오른쪽)이 보인다. ICRC를 비롯한 국제인도주의 기구는 정치적으로 엄격한 중립을 지키며 인도주의 활동에 집중한다. [로이터=연합뉴스]

피터 마우어 국제적십자회(ICRC) 총재(왼쪽)가 지난 4월 9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오른쪽)과 만나 인도주의 지원을 논의하고 있다. 두 사람의 뒷쪽에 베네수엘라 국기(왠쪽)와 ICRC 깃발(오른쪽)이 보인다. ICRC를 비롯한 국제인도주의 기구는 정치적으로 엄격한 중립을 지키며 인도주의 활동에 집중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석유 깔고 앉은 베네수엘라, 인도주의 위기

중동에선 시리아·예멘·팔레스타인·이라크가 고질적 문제 지역으로 분류됐다. 시리아와 예멘은 내전으로, 팔레스타인은 점령지 문제로 각각 문제이고 이라크는 종교와 종파에 따른 박해와 분쟁이 여전하다.
아시아는 로힝야 난민 문제로 미얀마가 문제 지역에 포함됐다. 남미에선 세계적인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포함됐다. 쿠데타 기도에 사실상 내란 상태인 이 나라는 식량과 기초 생필품, 그리고 전력 부족을 겪고 있다. 부패와 정부의 무능이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가난·부패 근본 치유할 개발지원 필요

이에 따라 글로벌 인도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구호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회 불안과 가난·부패 근본적으로 치유할 개발 원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국가나 무장 정파에 의한 인권 침해와 테러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전 세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국민이나 인도주의 활동가들에게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면 출입국을 통제하는 데만 급급해왔다는 지적이다. 적극적인 공적개발원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원, 국제협력을 통해 국제적 해결 노력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에 걸맞은 공적개발원조와 인도주의 활동 지원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적으로 제대로 된 국가, 존경 받을 만한 국가로 평가 받을 수 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은 한국에서도 의미가 있는 날이어야 한다.

서울시민청에서 토크콘서트와 사진전

8월 19일 세계 인도주의의 날을 맞아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는 19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유엔기구, 국제개발협력 NGO와 공동으로 19~26일 서울시민청에서 ‘개더 투게더(Gather Together)’ 캠페인을 연다. 캠페인은 19일과 26일 오후 6시 서울시민청 바스락 홀에서 개최하는 토크콘서트와 19~26일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여는 사진전으로 이뤄진다.
‘하나의 세계, 모든 인간애(One Earth, All Humanity)’를 주제로 사진전에는 대한민국해외긴급구호대(KDRT)와 국제인도주의 기관인 국제적십자회(ICRC)·국제이주기구(IOM)·세계식량계획(WFP)·유엔난민기구(UNHCR)·국경없는의사회(MSF)가 참가한다. 사진전은 식량·보건·임시거처·보호 등 각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인도적 지원에 참여하는 국제기구의 모습을 유기적으로 보여주고, 구호캠프에서 활동가와 수혜자 간의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소통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전 세계 분쟁과 재난의 상흔이 있는 지역에서 활약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크게 아프리카·아시아·중동·남미로 나눠 사진을 전시한다. 특히 IOM과 ICRC는 첨단기술과 인도주의 활동을 결합한 VR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강제이주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코너를 준비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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