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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피의사실공표죄 뒤에 숨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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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사회2팀 기자

최선욱 사회2팀 기자

요즘 일선 경찰서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관과 기자들 사이에 얼굴 붉히는 일이 일어난다. 사건의 내막을 아는 사람(경찰)과 이를 알아내 공개하려는 사람(기자)이라는 역할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일 그 이상이다.

계기는 지난달 22일 대검찰청의 결정이다. 대검은 울산지검의 ‘경찰관 피의사실 공표 사건’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올해 1월 약사 면허증을 위조해 약사 행세를 한 일반인 A씨를 구속하면서 보도자료를 냈는데, 검찰은 “A씨가 공인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며 수사 관계자 2명을 입건했다.

이후 경찰은 사실상 언론 취재에 입을 닫았다. 한 수사 담당 경찰관은 “지휘부는 ‘틀린 사실관계가 보도돼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잘 설명하라’고 지시하지만, 그랬다가 나도 수사 대상이 되면 어떡하느냐”고 털어놨다. 이런 고충은 이해되지만 ‘언론 취재에 원칙적으로 선을 긋는 관행을 만들자’는 경찰 일각의 숨은 의도도 느껴진다.

노트북을 열며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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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언론은 성가신 존재죠. 수사 내용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거나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면 무시하기 어려워요. 일이 더 생긴다는 얘기지요.” 한 총경급 경찰의 완곡한 표현이다. 하지만 일선에선 ‘언론이 뭔데 수사 방향을 좌지우지하려 하느냐’는 뉘앙스의 거친 말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는 검찰이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의혹이 제기된 뒤에서야 수사와 관련자 처벌이 이뤄졌던 사건들을 생각하면, 경찰이 피의사실공표죄를 이유로 언론 취재를 피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한 클럽 손님이 경찰 지구대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으로 끝날 뻔했던 일에, 언론이 각종 추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관련자 처벌까지 이어진 ‘버닝썬 사건’이 대표 사례다.

이번 논란에 대해서도 ‘경찰이 판단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진다’는 원칙을 세우면 답이 나온다. 사건마다 피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부정적 효과와 국민의 알권리가 충족되는 긍정적 효과의 무게 차이를 다는 것이 경찰 업무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전자가 무거우면 비공개, 후자가 무거우면 공개가 원칙이다.

경찰은 피의자 등 사건 당사자의 이익과 직결되는 수사 자체에 대해선 더 큰 권한을 갖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것이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경찰이 사건마다 일어나는 ‘피의사실 공표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가치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에 대한 판단 권한과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최선욱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