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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바이 코리아 필승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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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외환위기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1998년 6월 16일 코스피는 280.0에 거래를 마쳤다. 아직 깨지지 않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역대 최저치다. 위태로운 등락을 거듭하며 99년 3월 간신히 코스피 500선을 밟은 한국 증시에 구원투수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바이 코리아’ 펀드다. ‘한국 경제를 확신합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99년 3월 16일 애국 마케팅에 불을 지폈다. ‘제2의 금모으기 운동’으로 불렸다. 발매 12일 만에 1조원의 자금이 몰리고, 5개월 만에 설정액은 11조원을 넘어섰다. 99년 7월 코스피가 1000을 돌파하며 수익률은 70%에 육박했다. 몰려드는 자금으로 주식을 쓸어담다 보니 주가가 올랐고, 돈은 더 몰려들었다.

열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8월 대우사태 이후 IT 버블이 터지며 2000년 9월 코스피는 다시 500선 아래로 떨어졌다. 99년 100%에 달했던 수익률은 이듬해 -77%로 꼬꾸라졌다. 손실 본 사람이 속출했고, 자금 이탈이 이어졌다.

20년 전의 ‘바이 코리아’ 펀드를 떠올린 건 한 운용사가 출시한 ‘필승 코리아’ 펀드 때문이다. 부품·소재·장비 국산화에 나서는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산화 대상 100대 핵심 부품 관련 기업 투자도 검토할 예정이다. 운용 보수의 절반은 관련 연구에 기부할 방침이다. 운용사 대표는 “(일본과의 갈등 속에) 국난 극복에 동참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밝혔다.

자본 시장에서 수익을 기대하며 될성부른 기업에 투자하는 건 자연스럽다. 국익에 도움이 되면 금상첨화다. 그럼에도 불편한 구석은 ‘관제형 펀드’라는 시각 때문이다. 정부 주문에 따라 업계에서 이른바 ‘극일’ 펀드를 만든다는 소문 속에 이 펀드가 등장했다. 오비이락이겠지만, 애국 마케팅까지 정부 주도일 필요는 없을 듯해서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