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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화경제에 미사일 응수…‘남한 패싱’ 압박 전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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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호 03면

한·미 연합훈련에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시위로 반발하던 북한이 16일 문재인 대통령을 극력 비난하는 동시에 두 발의 발사체를 또다시 쏘며 도발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조평통 통해 하루 만에 이례적 반응 #서울까지 170㎞ 강원 통천서 발사 #한·미 연습 겨냥 무력시위 수위 높여 #작년 9·19 군사합의 위반 논란도

북한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 대한 불만이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이 담화에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폄하한 것도 “남북협력을 통한 평화 경제를 건설하고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경축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북한이 문 대통령 연설과 관련해 하루 만에 반응한 건 이례적이다. 북한은 최근 외무성을 내세워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외무성 대변인이나 미국국장, 미국연구소장 등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북·미 대화에서 한국은 빠지라”거나 “남북 물밑 대화는 진행되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동안 침묵하던 조평통 대변인이 지난 4월 25일 이후 113일 만에 등장한 것이다.

여기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시위에 “미국 공격용이 아니다”며 ‘면죄부’를 주고 북·미 정상 간 친서외교를 통해 직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긴밀히 협의해 왔다. 남북 비공개 접촉을 통한 실무 차원의 협력은 물론,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6월 12일)을 앞둔 5월 26일엔 김정은 국무위원장 요구로 판문점에서 원포인트 정상회담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유엔 대표부에서 북·미 채널이 가동되고 정상 간 소통도 원할히 진행되자 한국을 뒷전으로 미루며 압박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란 관측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한국과 대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며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한국에는 합의 이행과 메시지 관리를 잘하라는 차원에서 반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입은 무오류성의 상처를 한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최고 지도자(수령)의 결정에는 오류가 없다’는 논리를 주민들에게 주입해 왔다. 이를 고려할 때 김 위원장이 서명한 지난해 9월 19일 평양 공동선언과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별 진전이 없자 이를 문 대통령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도 북한이 6일 만에 발사체를 쏘아 올리면서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다음날을 고른 게 의도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지난 7차례 무력시위에 비춰보면 한국 정부의 유화 제스처 후 이처럼 신속히 도발에 나선 건 확실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이번 발사체의 택일은 대남 메시지의 강도를 의도적으로 극대화한 것”이라며 “한·미 연합연습과 한국의 전력 증강 사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남북 관계를 장기전으로 끌고 가겠다는 메시지까지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의 이번 발사는 한·미 연합연습이 진행 중인 주한미군 험프리스 기지를 사정권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위협하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통천에서 거리를 따져 보면 서울까지 약 170㎞,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까지 약 220㎞, 주한미군 험프리스 기지까지 약 230㎞다. 통천에서 발사한 이번 미사일 사거리는 이를 모두 포함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굳이 통천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한국의 주요 군 시설 중 주한미군 기지가 포함되는 사거리 지점을 골랐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며 “한·미 연합연습이 이곳에서 실시되고 있는 점을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조평통은 이날 담화에서 “전쟁 시나리오를 실전에 옮기기 위한 합동 군사연습이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고 반격 훈련이라는 것까지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 버젓이 북남 사이의 대화를 운운하는 사람의 사고가 과연 건전한가 의문스럽다”며 문 대통령을 비난했다. 조평통 담화대로 후반기 한·미 연합훈련의 2부 반격 연습은 17일부터 나흘간 실시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린 통천 지역을 놓고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2014년 2월 27일 북한이 스커드-C(최대 사거리 500㎞) 계열 미사일인 화성 6호를 발사하기도 한 이곳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에 포사격 금지가 명시된 지역이다. 이에 대해 군 당국자는 “군사합의에 통천으로 금지 지역을 표시한 건 해상 지역에서의 포사격 등 해상 군사 훈련을 하지 말자는 의미”라며 “이에 따라 이번 발사는 엄밀히 말해 군사합의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서 1조 2항은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 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해당 문구는 해상에서의 도발에 대해 완충 구역을 정하자는 취지이므로 미사일 발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군 당국의 해석이다.

하지만 군사합의를 지나치게 엄격히 해석한 것이란 비판도 만만찮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군사합의에 이 같은 문구가 명시된 것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하지 말자는 취지”라며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군사합의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정용수·이근평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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