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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침략 걱정한 이승만, 미국의 한·일 협력 요구 거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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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호 22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펴낸 『반일 종족주의』에서 ’현 한국사 교과서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펴낸 『반일 종족주의』에서 ’현 한국사 교과서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일본인에 대한 이 박사의 증오는 한국이 독립을 쟁취한 이후 한·일 양국의 관계개선(rapprochement)을 가로막는 한 요소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세를 알리는 1965년 7월 20일자 뉴욕타임스(NYT) 부고 기사 마지막 단락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 청산을 방해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는 동시에 반일주의의 원천 중 하나다. 이승만 대통령은 논란적 인물이다.

법·제도 세우려 권위주의적 통치 #국격 지키고 국민 정체성 확립 모색 #근대인 되기 위한 한국인의 노력 #일제 억압·지배 속에서도 이뤄져 #상대는 악, 나는 선 ‘종족주의’ 문화 #이런 상태 방치 땐 삼류 국가 전락

이승만학당 교장인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또한 논란적 학자다. 어떤 독자는 분노한다. 어떤 독자는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해줘 고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전작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2018)에 대해서도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세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독자도 있고 ‘조선 최고의 임금인 세종을 공격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따지는 독자도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반일 종족주의』 또한 ‘뜨거운 감자’다. 상식과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일본의 수탈, 징용,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학교나 매체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대부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반일 종족주의』는 우선 제목부터 ‘수상’하다. 우리나라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닐까. 이영훈 교장을 인터뷰했다. 다음이 요지다.

『반일 종족주의』 펴내 논란 불러

1951년 8월 강원도 홍천 전방부대 시찰 중인 이승만 대통령. [사진 국가기록원]

1951년 8월 강원도 홍천 전방부대 시찰 중인 이승만 대통령. [사진 국가기록원]

독재자이자 친일 청산을 방해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이승만 박사를 NYT 부고가 민주주의자·반일주의자로 묘사했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진보 매체인 NYT의 이승만 평가는 의외다.
“‘독재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다. 독재자는 법을 파괴하고 사회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히틀러·스탈린·모택동·김일성 같은 사람이다. 이승만은 그와는 전혀 상이한 ‘권위주의적 통치자’다. 가부장으로서 국민의 교사로서, 권위주의적 정치를 했던 사람이다. 법을 파괴하거나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초월하거나 전복하는 그러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법과 제도를 세우기 위해서 가부장적 정치를 한 분이다. 이승만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는 후진국 사회에서 나타난 자유민주주의의 초보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보도연맹 학살사건만 봐도 이승만은 독재자 아닌가.
“전쟁이 터졌다. 언제든지 적과 협력할 수 있는 3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조직화해 있었다. 실제로 서울이 점령됐을 때 완장 찬 사람들이 나와 공산 통치에 협조했다. 그런 비극은 역사의 비극이다. 한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일 없이도 전쟁을 무사히 치르고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시는 그런 여유를 허락하는 시기가 아니었다.”
보도연맹 학살사건에도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다. 그분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절한 사과에 더해 배상해야 한다. 땅속의 이승만 대통령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반일주의자 이승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승만 박사의 지나치게 경직한 반일주의·반일정책이 여러 가지 큰 비용을 지불했다고 생각한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첫째, 당시 미국은 한국이 일본과 협조해 동아시아 안보 체제를 운영하기를 바랐다. 한국이 일본에 농산물·해산물을 수출하고 일본의 공산물을 수입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한국에 일본과 통합된 국제분업관계에서 경제를 개발하라고 계속 요구했다. 전형적인 미국식 시장주의 논리다. 이승만은 그런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순응하면 한국이 일본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59년 여름 휴가차 부산을 찾았다. [사진 국가기록원]

59년 여름 휴가차 부산을 찾았다. [사진 국가기록원]

둘째, 새로운 국가의 새로운 국민이 됐지만, 당시 정체성이 불분명했다. 사석에서는 여전히 일본말로 대화하고 일본 노래를 불렀다. ‘일제 시대가 좋았다’는 사람도 상당수 존재했다. 셋째, 일본은 이 땅에 약 50억 달러 규모의 재산을 놓고 갔다. 이승만은 일본이 비록 패전했지만, 놓고 간 재산을 찾으려고 한반도에 언제 다시 들어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승만은 나라의 국격과 체면을 지키고 국민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 반일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국민에게 ‘세계인이 되라’ ‘자유인이 되라’고 이야기하기에는 국민 대부분이 문맹이었다. 소농사회라는 전통적인 질서 속에서 국민 다수가 살고 있었다. 이승만은 새로운 국민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 과제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선은 반일을 통해서 국민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서문에서 “국익을 위해서 잘못된 주장을 고집하거나 옹호하는 일은 학문의 세계에선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과거사에 대해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다. 거짓말 문화가 통용된 이유는 종족주의적 문화 때문이다. 종족주의는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집단 간에 어떤 절대적인 적대 감정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상대방은 악(惡), 나는 선(善)이다. 내 행동은 모두 옳고 상대방의 모든 행동은 음모고 악이고 사기고 폭력이다. 따라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정당화된다. 그러한 내부의 논리가 통할 때 거짓말은 문화가 된다. 저는 27년 전부터 국사학이 교과서를 통해서 가르치는 내용의 대다수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책 제목에 나오는 ‘반일 종족주의’를 대신해 ‘반일 민족주의’나 ‘반일주의’를 쓸 수도 있었다.
“서양에서 발생한 민족주의는 중세적인 보편주의를 넘어서 지방의 언어라든가 문화에 기초했다. 자유인, 자유로운 개인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바로 민족주의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귀족 정치에 저항하는 시민혁명의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고 국민국가가 국민을 통합하고 교육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그러한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자유로운 개인의 성립과 성숙을 전제한 민족주의가 아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인격을 갖는 집단이자 권력이자 신분이다. 그래서 민족주의라고 볼 수가 없다. 종족주의라고 보는 게 맞다.”

이 박사, 보도연맹 희생자 배상 찬성할 것

52년 12월 4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인을 경무대에서 만났다. [사진 국가기록원]

52년 12월 4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인을 경무대에서 만났다. [사진 국가기록원]

교수님을 ‘식민지 근대화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남들이 붙인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가 이뤄졌다. 그것은 맞다. 그런 뜻이라면 나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다. 토론 석상에서 ‘그렇다면 당신들은 근대화가 언제 이뤄졌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으면 이야기를 안 한다. 교과서를 보자. 우리나라에서 근대화 과정이 언제 이뤄졌는지에 대한 서술이 없다.”
근대화는 어떻게 이뤄졌는가.
“조선왕조라는 전통 문명이 일제하에서 해체된 이후에, 근대 인간으로 갱생하기 위한 한국인의 자기계발 노력이 일제의 억압과 차별 하에서도 이루어졌다. 1940년대가 되면 약 100만 호(戶), 전체 호수의 적어도 4분의 1 정도는 근대 부문에 속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방 이후에 자유인의 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이 성립할 수 있었다. 일제의 억압과 지배의 역사로만 보는 게 아니라, 억압과 지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근대인으로 만든 한국인의 역사를 봐야 한다는 게 제 입장이다.”
이번 책에서도 일본의 억압과 차별에 대해서는 별로 안 나타나 있다. ‘친일파가 쓴 책이다’라고 반응하는 독자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이 아직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억압과 차별만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시대를 그러한 안경으로만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말이 있다면.
“우리가 종족주의적 감정을 이대로 안고 가면, 결코 선진 사회나 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대한민국은 망하거나 아니면 한 세대 뒤에 중국 주변의 이류, 삼류 국가로 침체할 것이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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