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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 받은 홍재하 선생은 누구?

중앙일보

입력

15일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포상 독립유공자 고 홍재하의 아들 장자크 홍푸안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5일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포상 독립유공자 고 홍재하의 아들 장자크 홍푸안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홍재하(1898∼1960) 애국지사가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고 홍재하 애국지사의 아들인 장자크 홍푸안 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홍재하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와 영국을 거쳐 1919년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최초의 한인 단체인 재법한국민회(在法韓國民會)를 결성을 주도하고 이 단체의 2대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재불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젊은 시절 [사진 연합뉴스]

재불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젊은 시절 [사진 연합뉴스]

프랑스에서 그는 한인 동료들과 함께 1차 세계대전 전후복구 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을 각출해 독립자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영국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에 입국한 한인 30여명은 처음에는 1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지역에서 전사자를 안치하고 묘지를 조성하는 등의 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재하는 프랑스에서도 3·1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을 여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해방만 되면 가족 모두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길 꿈꿨지만, 해방 정국의 혼란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랑을 맞게 된다. 그는 파리에서 미국인 사업가의 집사 등으로 일하며 프랑스 여성과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고국의 전쟁구호 활동까지 돕던 그는 고국 땅을 끝내 밟지 못하고 1960년 암으로 타계했다. 유해는 현재 파리 근교 소도시 콜롱브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이후 그의 존재와 활약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듯 했다.

그러던 중 그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가 한인교포들의 도움으로 지난해 새롭게 확인되면서 사후 60년 만에 공적을 인정받게 됐다.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황기환 서기장이 홍재하에게 돈을 모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 친필 편지가 대표적이다. 편지는 아들인 장자크 씨가 보관 중이던 홍재하의 유품에서 나왔다.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차남 장자크 홍푸안 씨 [사진 연합뉴스]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차남 장자크 홍푸안 씨 [사진 연합뉴스]

또한 유품에는 이승만이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사실을 알리는 '독립신문'의 호외본이 최초로 실물로 확인되는 등 역사학계가 주목할 만한 자료도 다수 발견됐다. 장자크 씨는 최근 부친이 남긴 각종 서신 등 독립운동 관련 유품 일체를 국사편찬위원회에 기증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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