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인구와 시장의 빠른 변화, 과연 제도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지난 주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대형마트들의 실적이 악화되어 왔고 대표주자인 이마트가 올 해 들어 사상 처음으로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반대로 편의점들의 매출과 순이익은 최근 수년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요즘 주말에 대형 마트를 아이들과 함께 가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때마침 토요일 오후이기도 해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대형 마트 나들이를 함께 하자고 했다. 가서 맥주와 와인을 좀 사둘 요량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저희 안가요. 두 분 다녀오세요!’ 집에서도 요즘 찬거리는 가정 간편식이거나 그때그때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 온다고 했다. 나들이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맥주와 와인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던 나는 결국 아이들과 동네 편의점으로 향해야 했다.

대형마트 등 유통시장 큰 변화는 #저출산 등 빠른 인구변동의 결과 #급속도로 변화되는 시장에 맞춰 #규제 등 제도도 현실적 정비 필요

중고등학생인 두 아이는 편의점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들 세상을 만난 양 간식거리를 주섬주섬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한다. 주변을 보니 장바구니를 든 편의점 고객이 적지 않다. 과자만 골라 올 줄 알았던 아이들이 달걀, 과일, 고구마 등 먹거리는 물론 조그만 캐릭터 상품도 함께 골라 왔다. 그 와중에 친구들과 함께 오면 2+1 찬스를 활용하기에 딱 이라고 내게 상세히 안내도 해 주었다. 어떤 것은 ‘인싸템’이라며 꼭 사야 한다며 추천을 해 주었다.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품목이 다양해 진 것이 분명하다. 또 과거에 대량으로 한 번에 쟁여두는 아빠의 소비 패턴과 여러 가지를 조금씩 사두는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의 소비 패턴이 다른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5년 전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이들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 풀어 놓으면 장난감과 게임기 코너 사이를 누볐다. 그러다 입이 심심하면 시식코너를 휩쓸었다. 지금은 또래 사이의 ‘인싸템’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스스로 편의점을 찾아 떠난다. 어느 놀이터가 매력적인지도 잘 안다. 한 때 우리나라의 편의점 수는 편의점 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 비해서도 많은 편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나라의 편의점 시장은 포화 상태고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전망이 무색하게 편의점 산업과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반면 평생 계산대의 줄이 줄어들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대형마트 시장은 급속도록 줄어들고 있다.

사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대형 마트를 적게 가는 것은 현재의 40대 부모들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당연히 아이들은 커 가면서 본인만의 독립적인 소비를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소비 패턴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왜 지금 대형마트에 적자를 안길만큼 시장 사정이 나빠졌을까? 온라인 주문같은 판매 채널이 늘어나고 다양해져서일까?

유통 채널이 다양화된 것도 그 이유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시장의 변화를 가속화 시킨 것은 다름 아닌 누적된 인구변동의 결과다. 대형마트의 주된 고객은 5년 전까지의 우리 집처럼 주로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교까지의 자녀를 둔 3~4인 가구다. 대형마트가 급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2005년), 4~12세 아동의 수는 600만 명에 달했다. 2019년 약 401만 명으로 급감했다. 15년 동안 거의 200만 명의 대형마트 잠재 고객이 줄어든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2005년 109만 명에서 2019년 약 63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편의점은 주로 중학생부터 시작해서 30대 미혼 인구가 주된 시장이다. 저출산 현상으로 비록 새롭게 유입되는 중학생 수는 과거에 비해 크게 적지만, 30대 미혼 인구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거기에 편의점이란 귀가 직전 숙취해소 음료를 사먹는 곳에 불과 했던 부모들조차 나처럼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따라 편의점을 자주 찾으며 신규 고객이 되고 있을 테니 편의점 시장은 앞으로도 커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청년 미혼인구수가 늘어나고 중고등학생 수가 적지 않은 서울은 더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요즘 40대 부모들은 이전 세대보다 맞벌이가 많아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사 먹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봐오는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의 돈이 편의점에서 용돈으로 사용 될 확률이 커 진 것이다.

사실 기업은 인구변동이 만들어 내는 시장의 변화를 이미 예측하고 이에 맞춰 여러 가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실제로 대형마트들은 변화하는 인구에 맞춰 상품도, 진열 방법도, 매장 운용 계획도, 채널도 바꾸고 있다. 지난 주 보도 후, 필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시장에 영향을 주는 각종 제도였다. 인구변동이 시장을 바꾸면 관련된 제도도 빠르게 정비되어야 하는데 제도의 변화는 언제나 가장 늦다. 예컨대 대형마트 상권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는데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제도는 그대로다. 인구 변동의 속도는 지방이 더욱 빠르다. 지방의 시장이 더 빨리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지방에서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 불편함을 유발해 청년인구의 지방 살기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빠른 인구변동의 시기에 시장과 관련된 각종 제도와 환경이 적절한지 점검과 정비가 필요하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