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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비 셋③1965]'日 식민지배 불법' 빠졌다…65년 한일협정, 통한의 한문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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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제의 한반도 식민 지배는 분명한 불법이었다고 돌에 새기듯 못 박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1965년 체결한 한ㆍ일 협정에 말이다. 일본의 사죄도, 그에 따른 법적 책임과 배상 책임도 명확히 규정했다면 지금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가슴이 타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이 한국 경제엔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있지만 동시에 한ㆍ일 협정은 한계도 분명했다. 이를 Q&A로 짚어봤다.

관보에 게재된 1965년 한일 간 기본관계에 대한 조약. [국가기록원]

관보에 게재된 1965년 한일 간 기본관계에 대한 조약. [국가기록원]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에서 한국의 권리는.
45년 4월 부임한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은 전쟁 이후 급부상한 소련을 억지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육성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6ㆍ25 전쟁 발발이 그에게 확신을 줬다. 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을 맺어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키고, 동시에 미ㆍ일 안전보장조약을 타결한 이유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14조는 전쟁 중 피해에 대해 일본이 배상(reparation)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한국은 이때 승전국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서명식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대신 조약 4조 a(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당국ㆍ국민과 일본 간의 재산상 채권ㆍ채무관계는 특별약정으로 처리한다)에 따라 한ㆍ일 협정 협상이 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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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협정 서명식 당일 반대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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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일 협정에서 식민 지배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됐나.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한국, 합법이라는 일본은 협상 기간 내내 첨예하게 맞섰고 결국 ‘회색 지대’의 합의를 도출했다. 한ㆍ일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2조는 ‘1910년 8월22일(합병조약 체결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이미 무효’가 회색 지대의 문구다. 한국은 합병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불법이고 무효였다고 해석하고, 일본은 체결 당시에는 합법이었지만 65년 국교 정상화 시점에는 이미 무효가 됐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이동원 외무장관(왼쪽)과 시이나 외상. [중앙 포토]

이동원 외무장관(왼쪽)과 시이나 외상. [중앙 포토]

일본은 전혀 사과를 안 했나.
협정문 상으로는 그렇다. 다만 65년 2월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외상이 협정 가서명을 위해 방한했을 때 김포공항에서 발표한 구두 성명이 있다. “양국 간의 오랜 역사 중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라고 했다. 가서명 직후에는 양국 외교장관이 공동성명을 통해 이를 다시 확인,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유감 표명과 반성의 대상이 확실치 않고, 사죄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한계는 명확했다.
강제징용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나.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청구권 협정의 대상을 민사적 채권ㆍ채무 관계 청산으로 한정했지만, 한국 측은 협상 과정에서 사실 식민 지배에 따른 피해 배상 개념도 함께 넣어 청구권 자금을 요구했다.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서는 ‘대일 청구 요강’ 8개항 중 5항을 통해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및 기타 청구권을 변제하라’며 구체적 금액도 제시했다. 하지만 일본은 식민 지배는 불법 행위 임을 전제로 한 피해 배상이라는 개념을 배제했다.
 13일 대전 서구 보라매공원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대전 서구 보라매공원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 일본이 낸 자금의 성격은 무엇인가.
청구권 협정 1조는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공여와 2억 달러의 정부 차관을 제공하기로 하고, 2조에서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1조와 2조의 상관관계를 규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5억 달러가 청구권을 해결하기 위해 낸 자금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다. 협정 타결 이후 한국은 “실질적으로는 배상 성격이라는 것이 우리 견해”라고 하고, 일본은 “한국에 제공한 자금은 어디까지나 경제협력으로서 행해졌을 뿐”이라고 다른 얘기를 했다. 

유지혜·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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