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남북 ‘국·통’ 라인…서훈, 작년 2월엔 인제서 맹경일 접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해 2월 13일 오후 강원도의 인제스피디움 내 호텔을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찾았다. 인제스피디움은 당시 평창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을 위해 방한했던 북한 응원단의 숙소였다.

응원단으로 방한, 정상회담 작업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서 원장은 당일 이곳에 머물고 있던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현 해외동포원호위원장)을 만났다. 통전부에서 남북관계를 총괄하고 있던 맹 부부장은 ‘격’에 맞지 않게 응원단으로 내려왔다. 그런 그를 서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인사들이 은밀하게 접촉했다고 한다. 남북관계 복원과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이었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2월 10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다”며 “당초 정부는 시간을 두고 정상회담을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는데 맹 부부장이 20여 일간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협의가 집중적으로 진행되면서 속도를 낸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 당국자는 “맹경일은 남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결과를 평양에 보고하는 총책임자였다”며 “그의 역할은 4·27 남북 정상회담 때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남북은 공식적으론 정부 기관끼리 공개적으로 만나 협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남북 정보기관의 극비 접촉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타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보이지 않는 키가 국정원-통전부의 정보기관 라인이다. 지난해 2월 서 원장과 맹 부부장의 비공개 접촉이 그 사례다. 당시 서 원장과 맹 부부장의 호텔방 협의를 통해 같은 해 3월 5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 파견, 이후 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회담 등의 여건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있다. 다른 고위 당국자는 “정부는 한때 평창 패럴림픽이 끝난 뒤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며 “서 원장과 맹 부부장의 접촉 결과 분위기가 좋다고 판단했고 속도를 내기로 결론지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전직 정보 당국자는 “어느 나라나 결과가 확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선 정보기관이 움직여 길을 내는 게 일반적”이라며 “지난해와 올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 역시 스파이 라인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장기간 중단되며 공식 채널이 사라진 것도 물밑 접촉의 필요성이 커진 이유 중 하나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