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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기머리 박기옥, 말모이 권덕규 등 광복절 독립유공자 포상

중앙일보

입력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와 폭압에 항거해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고 고된 옥살이를 했던 이봉구(1897∼미상) 선생,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댕기머리 여학생 박기옥(1913∼1947) 선생 등 178명이 오는 15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포상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이번 광복절 포상자에는 건국훈장 독립장 1명, 애국장 8명, 애족장 40명, 건국포장 28명, 대통령표창 101명이 선정됐다. 이중 생존 애국지사는 백운호(89) 선생 1명이며, 여성이 10명이다.

이번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는 이봉구 선생은 1919년 4월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돼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서울에서 3·1운동 현장을 경험한 이봉구 선생은 고향인 경기 화성시 장안면으로 와 시위 군중과 함께 장안면·우정면 사무소, 우정면 화수리 경관주재소 등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고, 특히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기도 했다. 무단통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10년대 일제 폭압에 가장 격렬하게 투쟁하다 만세운동 사건으로는 이례적이라 할 중형을 받은 사례로 꼽힌다. 보훈처는 당시 판결문과 신문기사에서 이봉구 선생의 활동 내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봉구 선생이 1919년 4월 만세시위 당시 순사를 처단하고 도주했다가 체포됐다는 매일신보 기사(1921년 1월 18일 자). [사진 인천대학교=연합뉴스]

이봉구 선생이 1919년 4월 만세시위 당시 순사를 처단하고 도주했다가 체포됐다는 매일신보 기사(1921년 1월 18일 자). [사진 인천대학교=연합뉴스]

이번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는 박기옥 선생은 1929년 10월 30일 전남 나주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 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로 통학하던 중 일본인 학생들에게 희롱을 당해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광주는 물론 전국 194개 학교에서 5만4000여 명이 시위나 동맹휴교에 나서는 등 전국적인 독립운동이 전개됐고, 박기옥 선생은 이듬해 1월 시험거부 백지동맹 등 학내 항일시위에 참여했다가 퇴학을 당했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포상기준 개선에 따라 학적부 등에서 퇴학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 이루어졌다. 박기옥 선생이 희롱을 당한 데 격분해 일본인 학생들을 응징한 사촌동생 박준채(1990 애족장), 백지동맹 동지 이광춘(1996 건국포장) 선생은 이미 포상을 받았다. 이번 포상은 박기옥 선생의 자녀가 대신 받을 예정이다.

광주 여자고등보통학교생 박기옥(왼쪽)과 동교생 이광춘.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연합뉴스]

광주 여자고등보통학교생 박기옥(왼쪽)과 동교생 이광춘.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연합뉴스]

이밖에 1910년 대 주시경·김두봉·이규영 선생 등과 함께 최초의 국어사전 '말모이' 편찬을 준비했던 권덕규(1885∼미상)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권덕규 선생은 3·1운동 직후부터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1940년대 이후까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를 돌며 한글 보급을 위한 강습회에 강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보훈처는 식민치하의 엄혹한 시기에 이 같은 활동은 ‘문화 독립운동’의 모범적인 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스승과 제자로 함께 3·1운동에 참여했던 전주 신흥학교(신흥고등학교의 전신)의 유병민(1885∼미상)·문병무(1887∼미상)·김경신(1902∼미상) 선생과 일제 말기 단파수신기로 청취한 태평양전쟁의 전황을 전파하다 체포돼 고초를 겪은 염준모(1917∼미상)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비밀결사에 참여해 활동하다 체포돼 징역 5년을 받은 김한정(1896∼1950)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임시정부에서 항일 선전문을 배포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징역 7개월을 받은 제갈관오(1895∼1937) 선생에게는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포상자 중 유일한 생존 애국지사로는 백운호 선생이 직접 광복절 행사에 참석해 대통령표창을 받는다. 백운호 선생은 항일비밀결사에 참여하다 1942년 사회 질서와 안전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보훈처는 이번 포상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자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만1014명, 건국포장 1308명, 대통령표창 3367명 등 총 1만5689명(여성 444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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