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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분양 코앞까지 갔던 강남 ‘분양가 상한제’ 날벼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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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관련 당정 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의원회관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관련 당정 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의원회관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오는 10월부터 정부가 지정한 투기과열지구 내 민간택지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싼 ‘로또 아파트’를 막기 위한 조치로 전매제한 기간을 5~10년으로 강화한다.

민간 분양가 규제 10월 시행 #입주자 모집승인 신청부터 적용 #둔촌주공·신반포3차·경남도 해당 #로또 막으려 전매제한 최장 10년 #홍남기 “관계 부처 협의 후 적용” #분양가, 시세의 70~80% 될 전망 #업계 “서울 등 신규 주택 줄어들 듯”

국토교통부는 12일 이런 내용이 담긴 ‘분양가 상한제 적용 기준 개선안’을 발표했다. 지금껏 공공택지에만 적용하던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다가 2015년께 사문화된 제도를 부활시켰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이후 11개월 만에 추가 규제 카드를 꺼냈다. 최근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다시 꿈틀대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규제를 피한 고분양가가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문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국토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상한제가 도입되면 분양가가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민간 분양가 상한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지정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필수 요건인 ‘기존 3개월 주택가격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인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개정했다. 여기에 선택 요건 셋 중 하나만 충족하면 정부가 언제든 분양가 통제에 나설 수 있다. ▶분양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거나 ▶청약경쟁률이 직전 2개월 모두 5대 1을 초과하거나 ▶직전 3개월 주택 거래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경우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지정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지정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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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을 기준으로 최근 1년간 물가상승률의 전국 평균은 0.6%, 서울과 경기는 0.7%다. 투기과열지구라면 모두 분양가 상한제 후보가 된다. HUG의 분양보증 심사를 피해 후분양을 선택하더라도 상한제를 적용받는다. 상한제를 피해 ‘임대 후 분양’에 나서더라도 분양가 책정이 자유롭지 않다. 이명섭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임대 후 분양을 하더라도 임대보증금 관련 HUG의 분양보증을 의무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미·중 무역전쟁 격화 등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하면서 ‘속도조절론’이 여권 일각에서 나왔지만 김 장관은 밀어붙였다. 이와 관련,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계부처 간 별도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이날 경기도 파주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업계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분양가 상한제는 효과도 있지만 나름대로 단점도 가진 게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발표는 적용 요건을 완화하는 절차에 돌입하겠다는 1단계 조치”라며 “부동산 상황이나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실제로 민영주택에 적용하는 2단계 조치는 관계 부처 간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 지역과 범위는 시행령 개정 이후 국토부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에서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홍 부총리 발언은 구체적인 상한제 적용 지역을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재건축·재개발 타격 불가피=“이렇게 분양가 규제를 받게 될 줄 알았으면 사업을 중단했을 겁니다. 이제 그만둘 수 없어 손해가 불가피합니다.”

12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1구역 재개발 조합의 정금식 조합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국토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확대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반응이다. 이번 발표로 조만간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기준이 ‘관리처분계획인가 신청’에서 ‘최초 입주자 모집 승인 신청’으로 변경된다. 아직 일반분양을 하지 않은 재건축 단지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둔촌주공’ ‘신반포3차·경남’ ‘반포주공1단지’ ‘개포주공 1·4단지’ 등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모두 상한제 대상이 된다. 문제는 이문1구역처럼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이주를 진행하고 있는 사업장 등이다. 서울에서만 66개 사업장 6만8000가구다. 이 사업장들은 사업을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일반 분양가를 규제받아 조합원들이 추가분담금 증가 등의 손해를 보게 됐다.

건립 가구가 1만2000여 가구여서 ‘단군 이래 최대 정비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명백한 재산권 침해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이번 규제를 오는 10월 초 공포와 동시에 시행할 예정인 점과 관련해선 “유예기간이라도 충분히 주면 모르겠는데 너무 빠듯하다”는 불만이 업계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재개발 집값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서울·과천·광명 등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등 사업장의 가격 약세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은 주택 가격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 왔다. 재건축 등이 약세로 돌아서면 다른 일반 아파트에도 영향을 주리라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강세를 보인 서울 신축 아파트의 기세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의 신규 주택사업 추진은 당분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화·김민중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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