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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화이트국서 일본 배제 맞불… 협상 여지는 남겨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정부가 일본에 전략 물자를 수출할 때 적용해 온 우대 조치를 철회하기로 했다. 한국도 일본에 더 깐깐한 수출 심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 국가(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키로 한 데 대한 ‘맞불 카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4대 국제 수출 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국가를 ‘가’ 지역에, 그 외의 국가를 ‘나’ 지역으로 분류한 기존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가’ 지역을 ‘가의 1’, ‘가의 2’ 2개 지역으로 세분화하기로 했다”며 “개정안에 일본을 신설한 가의 2 지역으로 분류해 원칙적으로 나 지역 수준의 수출 통제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 일본을 한국의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지는 않지만, 전략 물자 수출 우대 혜택은 없애 실질적으로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미다. 산업부 관계자는 화이트 국가에서 일본을 배제하는지에 대해 "한국은 일본처럼 화이트 국가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일본이 기존 '가' 지역에 묶여 있어 받았던 수출 우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측면에서 보면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바세나르 체제 등 4대 전략물자 국제 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29개국(일본 포함)을 ‘가’ 지역에 편성해왔다. 이 지역에 1735개 전략 물자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 간소화한 수출 심사를 해주고 있다. ‘가’ 지역 외는 모두 ‘나’ 지역으로 분류해, 이곳으로 수출하는 기업은 정부로부터 3년짜리 포괄허가를 받을 수 없고 건건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가’ 지역 수출은 허가신청서와 전략물자 판정서만 제출하면 되지만, ‘나’ 지역 수출은 계약서ㆍ서약서 등 추가 제출 서류도 늘어난다. ‘나’ 지역 수출은 비 전략물자이지만 무기 제작ㆍ개발 전용 우려가 있는 경우 적용되는 ‘캐치올’(Catch-allㆍ상황허가) 규제도 더 엄격해 전용 의도가 ‘의심’만 되어도 상황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전략물자 수출허가 지역별 관리 제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략물자 수출허가 지역별 관리 제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렇다면 일본을 유일하게 떼어 내 포함한 ‘가의 2’ 국가에 대한 수출 통제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쉽게 말해 기존 ‘가’ 국가와 ‘나’ 국가의 중간 수준이다.

예를 들어 자율준수기업(CP)에 내주고 있는 사용자 포괄허가는 ‘가의 1’ 지역에서는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가의 2’ 지역에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허용한다. 개별 수출허가의 경우 제출서류가 ‘가의 2’ 지역은 5종이다. ‘가의 1’ 지역(3종)보다 늘어난다. 심사 기간도 ‘가의 1’ 지역은 5일 이내지만 ‘가의 2’ 지역은 15일 내로 늘어난다. 다만, 개별허가 신청서류 일부와 전략물자 중개허가는 면제하는 식이다.

성 장관은 일본을 ‘가의 2’ 지역으로 분류한 배경에 대해 “전략물자 수출통제제도는 국제수출통제체제의 기본원칙에 부합되게 운영해야 한다”며 “국제 수출통제체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제도를 운용하거나 부적절한 운영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국가와는 긴밀한 국제공조가 어려우므로 이를 고려한 수출 통제제도의 운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통상적인 고시 개정 절차에 따라 20일간 의견수렴,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9월 중 시행할 예정이다.

일본에 수출 통제 강화란 ‘맞불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협상 여지는 열어뒀다. 성 장관은 “의견 수렴 기간에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한국 정부는 언제, 어디서건 이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이 한국에 대해 소재·부품·장비 등 3대 품목에 대해 수출을 제한한 것처럼 특정 제품을 지목해서 대일수출에 제한을 가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태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일본이 우리에게 하던 방식으로 똑같이 맞대응하는 차원이 아니다"라면서 "다만 향후 제도 운용상 문제가 발견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주요 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주요 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당초 정부는 8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다’ 지역을 신설하고 일본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다 이번 개정안 수준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허가를 내주는 등 보복 강도를 조절하고 있는 데다 세계무역기구(WTO) 맞제소 등으로 역공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공세 수위를 정한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수출입 통제를 통해 일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철강ㆍ금속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첨단소재 등 전략물자에 대한 일본 수출 비중이 미미해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란 분석도 나온다. 주력 수출품에 대한 통제가 국내 대일본 수출 기업의 비용과 손실을 더 키울 수도 있다. 한국 기업의 수출입 차질에 따른 피해가 일본 기업에 비해 더 크기 때문이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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