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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文지지율만 올려줬다" …日서 확산되는 전략 미스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베 총리의 결단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이 소생했다."
서울 특파원 출신인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이 월간지 문예춘추 9월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아사히 편집위원 "수출규제 조치가 文 소생시켜" #나카니시 교수 "韓전체가 타깃 아니라 밝혔어야" #닛케이 칼럼 "반일과 거리둔 여론에 접근 필요" #日외무성 "대체로 예상했다" 판단 미스 불인정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히려 올랐고, 보수 야당인 자유한국당까지 "친일파 딱지가 붙을까 걱정해"(반일)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며 사용한 표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수출규제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일본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해당 글에 등장한 일본 정부의 관계자는 "외무성을 제치고 총리관저와 경제산업성이 자기들 마음대로 이야기를 진전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출 규제 강화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등)한국 정치권의 정세를 머리에 미리 넣고 있었다면 아베 총리가 적에게 소금을 보내는 것과 같은 조치는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다.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大名·지방의 번주)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이 적으로 대립했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에게 소금을 보냈던 일을 거론하면서, 아베 총리가 결국 문 대통령을 돕는 결과가 됐음을 비유한 것이다.

11일 자 마이니치 신문에 실린 국제정치학자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교토대 교수의 칼럼도 일본 정부의 전략 미스를 꼬집었다.

나카니시 교수는 이번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해 "한국의 여론은 이번 조치를 한국경제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며 "‘반일 카드’를 손에 쥐게 되면서 문재인 정권으로선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지렛대가 됐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압력을 넣고자 했다면 차라리 그 대상과 목표를 명확하게 정의, 표명할 필요가 있었다"며 "타깃은 문재인 정권의 대일정책일 뿐 한국 전체가 타깃이 아니라는 점, 또 한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면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를 해제할지를 제시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나카니시 교수는 지난 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고, 야당과 경제계까지 (반일 흐름에) 가세하고, ‘항일 보이콧’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문화 교류까지 중단되는 현재 상황은 일본 정부의 당초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당초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일본 내에선 한국 내 반일 여론을 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자 분노한 한국 시민들이 3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자 분노한 한국 시민들이 3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아키타 히로유키(秋田浩之) 코멘테이터(칼럼니스트)는 10일 자 칼럼 ‘일ㆍ한 대립으로 잃는 것들’에서 "한국 내엔 반일과 거리를 두고 있는 여론도 있는 만큼 한국 국민에게 (메시지를) 직접 전파하는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정부 레벨에선 일본ㆍ미국ㆍ한국 3개국 간의 대화를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전략 미스와 '새로운 접근법'을 지적하는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공개적으로 관련 언급을 피하고 있다.

지난 9일 도쿄에서 한국 특파원들을 만난 일 외무성 당국자는 "일본이 (수출 규제 강화와 같은) 조처를 하면 한국에서 꽤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대체로 (지금처럼) 전개되리라 봤다”고 말했다.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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