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생 후반부 시작하는 증권맨이여, 매미를 닮아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12)

심한 폭우가 내리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자 꽃과 나무들이 걱정되어 정원으로 향했다. [사진 pxhere]

심한 폭우가 내리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자 꽃과 나무들이 걱정되어 정원으로 향했다. [사진 pxhere]

드디어 비 갠 아침이다. 오랜만에 아침 창밖이 밝아 보인다. 장맛비가 연일 내렸다. 어젯밤에는 심한 폭우까지 내렸다. 이제 좀 비가 그쳤나 보다. 정원이 걱정된다. 꽃과 나무들이 괜찮은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원으로 향한다.

말이 정원이지 소박하고 아담한 작은 뜰이다. 엄마의 정성이 담긴 곳이다. 지난 세월 엄마가 애지중지하며 가꾼 곳이다. 엄마가 쓰러진 후 생기 잃은 정원을 지난 3년 동안 정성을 쏟았다. 풀과 나무들이 살아나야 엄마가 회복될 거 같아서였다. 나무, 화초는 물론 풀 심지어 화단의 돌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엄마가 건강이 회복되어서인지 정원이 다시 예전처럼 생기를 품고 있다.

혹시나 화초들이 쓰러져 있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거실문을 연다. 내 시선은 전광석화처럼 정원의 나무들을 훑어 내려간다. 나무들은 오히려 더 싱그럽게 빛나고 있다. 다행이다. 화초들은? 신발을 급히 신고 나가 정원 바닥을 살핀다. 비바람에 쓰러진 화초들이 안쓰럽게 누워 있다. 이런, 하나둘 화초들을 세워주고 지나가는데 뭔가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빗물에 젖은 땅바닥에 무언가가 퍼득거린다. 잠이 덜 깼나? 눈을 껌벅거려본다. 그리고 다시 살펴본다. 날개가 있다. 검은 그물 같은 날개다. 고추잠자리인가. 아니다. 고추잠자리치고는 몸이 크다. 빗물에 젖어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머리를 숙여 눈을 점점 가까이한다.

처마 밑 가느다란 화초 자락에 매미 허물이 매달려 있었다. [일러스트 강경남]

처마 밑 가느다란 화초 자락에 매미 허물이 매달려 있었다. [일러스트 강경남]

아, 매미다! 매미가 바닥에서 퍼득거리고 있다. 어젯밤 폭우에 그만 쓸려 내려왔나 보다. ‘어디서 온 거야 대체.’ 처마 밑에 피어있는 가느다란 화초 자락에는 매미 허물이 매달려 있다. 참으로 신기하다. 대단하다. 어떻게 처마 밑까지 와 이 가느다란 화초에 매달려 허물까지 벗고 나온 것일까.

매미를 옮겨야 했다. 매미 옆에 떨어진 감잎이 보인다. 빗물에 쓸려 내려온 매미를 살포시 나뭇잎에 올려 화단 나무 곁에 옮겨 놓는다. 그 나무는 여름마다 매미 소리를 낸다. 올여름에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증권가에서 일한 분들과 만나는 날이다. 90년대 중반 나는 마케팅과 홍보 전문가로 증권가에 입성했다. 주식 단 한주도 사보지 않던 내가 증권가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증권사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은행과 너무도 다른 환경에 놀랐다. 그들의 열정에 더 놀랐다.

화려한 인생 전반부 보낸 증권맨들  

은행은 전반적으로 은행 문을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을 기준으로 업무가 진행된다. 당연히 증권사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증시가 개장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일하는 줄 알았다.

증권사는 증시가 개장하기 2시간 전인 아침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AP=연합뉴스]

증권사는 증시가 개장하기 2시간 전인 아침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AP=연합뉴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증시가 개장하기 2시간 전부터 업무 시작이다. 아침 7시다. 어김없이 회의실로 모인다. 시장전략 회의다. 지난밤 런던 금융시장, 뉴욕 금융시장 등 해외 시장이 어떻게 마감되었는지부터 점검한다. 다들 새벽잠을 설치며 각자 미리 조사하고 분석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아침 7시부터 전략회의를 한다. 오전 8시에는 고객사들에 각종 분석자료를 송부한다.

증시가 개장하는 9시부터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 화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주가의 움직임 따라 탄성과 괴성도 오고 간다. 1분 1초를 다툰다. 옵션을 거래할 때는 더하다. 매의 눈이 따로 없다. 오후 3시 반 증시가 마감되면 바쁘게 사라진다. 퇴근이 아니다. 거래처, 고객사들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증권가에서는 정보가 바로 돈이다. 최고의 영업력을 과시하는 증권가의 미다스 손들이 나오기도 했다.

영업력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분야가 애널리스트다. 산업별로 이 분야에 최고라는 사람은 부르는 것이 값이다. 매년 언론사들은 분야별 최고 애널리스트를 뽑는다. 한번 얻은 명성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 애널리스트 말 한마디에 주가가 요동치기도 한다.

기업금융·투자금융 분야에서는 기업인수 및 금융 공학이라는 기법으로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특히 IMF 금융위기 이후에는 기업사냥꾼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대기업 오너 일가를 무너뜨리는 금융기법은 드라마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오늘 그 주인공들을 만나는 자리다. 만나면 서로가 영웅이다. 이런 그들에게도 퇴직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일부는 개인 자산운용부티끄를 차려 운영도 해보지만, 과거의 영광에 비할 수 없다. 이제는 기라성 같은 후배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선배 체면에 후배들에게 요청도 못 한다. 예전처럼 정보력도 기민함도 좋지 않다. 만나면 과거 영웅담으로 꽃을 피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힘든 오늘을 서로 푸념한다. 그 옛날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질 뿐 내일 이야기는 없다.

오늘 아침 매미가 떠올랐다. 이 매미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얼마나 준비한 것일까. 여름철 나무껍질에 낳아진 매미 알은 알에서 깨어나 땅속으로 들어간다. 그 매미 애벌레는 땅속에서 탈피한다. 본인의 틀을 깨는 성장의 고통을 감내한다. 그것도 1번이 아닌 15번을. 그 15번의 탈피를 통해 성장한 매미는 7년째 여름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땅속에서 나온 매미는 비로소 마지막 껍질을 벋고 드디어 성충인 매미로 거듭나 나무 위에 올라 세상에 신고를 한다. 맴맴맴!!! 7년의 세월이다. 15번의 환골탈태이다. 그 새로운 탄생을 위해.

지나간 과거에서 벗어나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달려간다. [일러스트 강경남]

지나간 과거에서 벗어나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달려간다. [일러스트 강경남]

15번 허물 벗는 매미의 거듭나기   

인생 전반전은 지났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다. 이제 그만 과거에서 벗어나자. 과거는 과거일 뿐 내일을 선사하지 않는다. 바로 오늘이 나의 미래를 만든다.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또 다른 나의 미래를 만들어 가보자. 나 자신을 새롭게 거듭나보자. 인생 후반전 시작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매미도 15번 거듭나는데!

비 갠 늦은 오후 매미 소리가 들린다. 오늘따라 더 우렁차다. 정원 나뭇가지 사이로 비 갠 저녁 햇살이 더욱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강명주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