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Why] 오늘도 걷는다, 민통선을…이인영은 왜 뙤약볕에도 그 길을 걸었나

중앙일보

입력 2019.08.10 05:00

업데이트 2019.08.10 07:46

그는 올여름에도 걸었다. 원래 휴가를 내고 모든 일정에 함께 하려고 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국내·외 이슈와 현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7월 국회’ 의사일정 합의,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이 그랬다. 그래도 주말을 포함, 중간의 며칠은 시간을 냈다.

걷기의 주인공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다. 그가 기획한 ‘2019 통일걷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행사가 8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의 해단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지난달 27일~지난 8일, 12박 13일 간 강원도 고성을 출발해 경기도 파주까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남방한계선 남쪽 5~10㎞)을 따라 340㎞를 걷는 일정이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오후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2019 통일걷기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오후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2019 통일걷기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국회 일정 중이었지만 그는 13일 가운데 꼬박 닷새를 함께 걸었다. 본회의를 앞두고 국회가 긴박하게 돌아갔던 지난 1~2일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저녁 일정을 함께 했다. 그가 탄 차량은 주로 새벽에 국회와 통일걷기 현장을 분주히 오갔다. 해단식을 한 지난 8일 오후 잠깐 만난 그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가볍고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렸는데도 그가 ‘일탈’을 감행한 이유는 뭘까.

이 원내대표가 처음 민통선을 걸은 것은 2017년 8월이다. 하지만 예고는 6년 전인 2011년에 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종주하고 쓴 저서 『산티아고 일기』 말미에 “나는 지금부터 통일의 길을 걷고자 한다. 우리는 아무리 늦어도 20년 안에 통일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리곤 20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들어가면서 비무장지대(DMZ)나 남방한계선 철책선을 따라 걷는 구상을 했다.

그러나 국방부에서 난색을 보여 차선책으로 민통선으로 여정을 바꿨다.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하고 미사일을 꽝꽝 쏴대면서 한반도 정세가 ‘매우 나쁨’이었던 그해 이 원내대표는 민통선을 걸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지난 8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2019 통일걷기 해단식에서 참가자들과 마지막 코스를 함께 걸으며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지난 8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2019 통일걷기 해단식에서 참가자들과 마지막 코스를 함께 걸으며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6월에도 걸었다. “아내가 사경을 헤매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저도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휴전선이 열릴 때까지 저는 해마다 민통선이라도 걷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려 걸었습니다. 마침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정세도 평화 무드로 전환했고, 이 작은 평화라도 젊은이들에게 기꺼이 내어주고 스스로 느끼고 더 창조해 가도록 그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2018 통일걷기, 민통선 평화로 걷다』)

같은 책 에필로그에 그는 “2019년 통일걷기에서 만납시다”라고 예고도 했다. 또 걷겠다는 예고였다. 그런데 변수가 생긴게 지난 5월 원내대표 당선이었다. 여당 원내대표라는 중책을 맡은 만큼 국회를 떠나야 하는 일정에 대해 주변의 만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보좌진들에게 “잘 준비하라”고 당부를 해 놓았다고 한다. 걸을 준비 말이다.

이런 통일에 대한 애착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 그 뿌리가 있다. 1980년대 후반 정치적 격랑 속 학생운동세력이던 전대협의 주된 관심사는 통일 문제였다. 이 원내대표는 전대협 초대 의장이다. 87년 전대협의 선전 문구였던 ‘통일의 물결로 굽이쳐라 내 사랑 한반도여!’는 이 원내대표가 직접 고안했다고 한다. 그는 2017년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전대협이 생각하는 통일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1987년 11월 15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영호남 시민결의대회에서 지역감정 해소를 호소하고 있는 이인영 전대협 의장. [연합뉴스]

1987년 11월 15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영호남 시민결의대회에서 지역감정 해소를 호소하고 있는 이인영 전대협 의장. [연합뉴스]

“처음 전대협을 만들 때 4·19 이후 조국통일 문제와 민중생존권 문제가 왜 나왔을까 생각했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사회적 DNA’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가 포문을 열면 민중생존권 문제가 제기되고, 그리고 통일의 기운이 나온다. (중략) 1997년 정권교체 이후를 보라. 외환위기로 제기된 민중 생존 문제를 김대중(DJ) 대통령이 복지 확충으로 막았다. 이어 통일문제가 활성화되고 햇볕정책을 거쳐 결국 남북정상회담으로 갔다.”

초선 때인 2007년 저서 『나의 꿈 나의 노래』에서도 비슷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원내대표는 자신의 정치를 ‘민족민주정치’라고 규정하고 이렇게 설명한다. “자주민주통일을 실현하는 정치, 완만한 진보가 완고한 보수주의보다 낫다는 것을 입증하는 정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고 중산층과 대다수 서민의 경제와 복지를 증진하는 정치,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좀 더 당당한 자주외교를 펼치는 정치, 그래서 마침내 통일을 실현하고 평등을 실천하는 정치 등등” 그러면서 한 구절을 덧붙인다. “많은 이들은 나보고 변하라 했고, 말이라도 아니면 주제라도 바꾸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고추장 빛을 간직한, 된장의 향을 간직한 정치인이고 싶습니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2017·2018년과 달리 정부·여당 입법과제를 담당하는 원내대표임에도 굳이 회기 중에 개최되는 행사에 직접 참여했어야 했느냐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는 7월 임시회가 열려 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5일과 7일 공식 일정을 빼곤 통일걷기에 ‘올인(all-in)’했다. 지난 6일도 운영위 전체회의를 마치곤 곧장 민통선으로 향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과문제'로 정회된 회의장을 나서며 이인영 운영위원장과 언쟁을 하고 있다. [뉴스1]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과문제'로 정회된 회의장을 나서며 이인영 운영위원장과 언쟁을 하고 있다. [뉴스1]

또한 출정식과 해단식에는 서호 통일부 차관이 참석했고, 최전방의 군 관계자들도 나왔다. “지난달 말부터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여러 매체를 통해 말 폭탄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과연 적절한 행사였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원내대표 측은 “이 원내대표의 의지가 워낙 강했고, 경제안보·군사안보 위기 상황에 따른 위기관리를 위해 국회 일정을 우선적으로 소화했다”며 “민통선을 평화의 일상으로 바꾸기 위해 매년 휴전선에서 좀 더 가까운 민통선 안쪽으로 걷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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