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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본사가 꼭 붙잡아 두려고 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49)

미국 페이스북 본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붙잡아두고 싶어 하는 한국인 디자이너가 있다. 홍콩과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유명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해서 금수저에 천재쯤 되나보다 했다.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외국 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영어를 뛰어나게 잘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안 돼 식당 웨이트리스로도 일했다. 한국 컴퓨터학원에서 웹디자인을 다시 공부해 겨우 취업에 성공하고 좌충우돌 업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은 페이스북에서 크게 인정 받는 사람이 됐다고 한다. 강하게 호기심이 일었다.

강남 학원서 웹디자인 공부

한국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미국의 좋은 회사에 도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어 한국을 찾았다는 최민이(37) 페이스북 프로덕트 디자인 매니저를 만났다. ‘디자인 커리어를 디자인하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는데, 적지 않은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이 꽉 들어찰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디자인 커리어를 디자인하라’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최민이 페이스북 디자인 매니저 [사진 최민이]

‘디자인 커리어를 디자인하라’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최민이 페이스북 디자인 매니저 [사진 최민이]

바쁜 일정에 잠깐 귀국했다고 들었다. 오롯이 강연을 하기 위해서인가. 
“맞아요. 취업과 이직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니까 마음이 좀 아프기도 하고요.”
강연 내용중 뜻밖의 내용이 제법 많다. 특히 ‘좌충우돌 취업기’라고 할까. 승승장구 해 지금의 자리에 온 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다소 부끄러운 얘기도 털어놓아야지요. 외국에서 오래 산 것에 비해 영어도 잘 못했고 지금도 아주 뛰어나지 않고요. (8~14세 홍콩 거주, 17세~현재 미국 거주)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라고 디자인 분야에서는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돼 식당일을 1년 넘게 하기도 했어요. 막막한 마음에 귀국해 강남역의 한 컴퓨터학원에서 웹디자인을 공부하고 나서야 ‘에스티로더’에 입사할 수 있었으니, 제가 생각해도 좀 웃겨요.(웃음)”
강연에서 좌충우돌 취업기를 소개하고 있는 최 매니저. [사진 최민이]

강연에서 좌충우돌 취업기를 소개하고 있는 최 매니저. [사진 최민이]

미국 유명대학 졸업하고 입사시험에 다 떨어졌는데, 한국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세계 최대 뷰티 회사에 입사했다니, 미안하지만 좀 웃기긴 하다.
“그렇죠.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학원에서 웹디자인을 배워 에스티로더에서 웹디자이너로 들어갔으니 인생이 계획대로 순탄하게만 풀린 것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죠. 최악의 외환위기 시절이었다는 사실이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 힘든 시절이었어요.”
에스티로더에서 실력을 인정 받아 바로 페이스북으로 스카우트 된 것인가.
“웬걸요. 회사를 다니면서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UX(User Experience), UI(User Interface) 공부를 더 했어요. 당시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한 분야였는데 막 결혼해서 임신한 몸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학교를 다닌 거죠. 학위 받고 나서 UX·UI 관련 일이 하고 싶어 이직 시도를 하는데 또 족족 떨어지는 거에요.”
쉽지 않았겠다는 상상이 간다. 어떻게 이직에 성공했나.
“남편의 도움이 컸어요. 제 친구들에게 저의 문제점을 물어보고 정리해서 알려주더라고요. 결론은 제가 너무 비주얼에 치우치고, 사람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으며,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에요.”
한국 같았으면 대판 싸웠을 수도 있는데, 도움이 됐다니 문화의 차이인가.
“너무 간절했나봐요. 고맙게 받아들이고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죠. 남편이 평소에도 문제를 잘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소질이 있거든요. 결국 작지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로 옮겼으니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던 거죠. 다만 저도, 그 회사도 서로 모험의 성격이 강한 시도이긴 했어요. 작고 안 알려진 회사인데다가 매니저에서 평직원으로 낮춰서 갔거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여기가 일종의 바닥의 역할을 해 줬지요. 이후에 ‘Frog’라고 하는 꽤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었고, 페이스북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거든요.”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힘이 되는 조언을 해 주고 있다는 남편 최범석 씨와 함께. [사진 최민이]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힘이 되는 조언을 해 주고 있다는 남편 최범석 씨와 함께. [사진 최민이]

제의가 왔을 때 바로 옮겼나.
“아니에요.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야 하고, 테크(Tech) 회사에서 일할 계획이 없었던 데다가 매니저 자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망설여지더라고요. 이때도 남편의 조언이 힘을 발휘합니다. 능력 인정 받으면 곧 매니저 이상으로 승진할 수 있을 것이고, 이머징 마켓 여성들 대상으로 하는 일이면 관심이 있는 주제 아니냐고 객관적인 조언을 해 주더라고요. 믿고 따랐더니 이렇게 결과가 좋게 나왔네요, 고맙죠.(웃음)”
좋은 대우를 받고 옮겼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제일 궁금한 것 중 하나 아닌가. 구체적으로 얘기해 줄 수 있나.
“숫자를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웹디자인 할 때와 비교했을 때는 10배 가까운 높은 연봉을 받고 있어요. 테크 회사에는 다른 데 못 가게 붙잡아 놓는 시스템, 우리끼리는 ‘금수갑’이라고 부르는 건데 그 혜택이기도 하죠. 공짜는 아니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일 아닌가요.”
페이스북에서 팀원들, 아이들과 함께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는 최 매니저. [사진 최민이]

페이스북에서 팀원들, 아이들과 함께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는 최 매니저. [사진 최민이]

본인의 경험과 노하우를 한국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정보가 부족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도전할 마음조차 갖지 않는 후배들이 많더라고요. 경험해 보니까 어렵지만 도전해 볼 수 있는 길이 보이는데 안타까웠죠. 제가 회사에서 면접도 많이 보는데, 중국·인도 등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도 많이 지원합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영어도 잘 하고 일도 잘 하면서 도전하지 않는지 답답할 때가 많아요. 취업도 힘들고 이직도 힘들다고 하지만 눈을 좀 돌려보면 기회가 있는데요. 도와주고 싶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을텐데. 앞으로 계획을 간단히 말해달라.
“미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지인들끼리 모여 얘기하다 보니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미국의 이른바 ‘FANG’ 이라고 하는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에 근무하는 뜻이 맞는 한국인들을 모아 한국의 후배들과 정보와 노하우를 나누고 상담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데 역시 남편이 발벗고 나서주고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강연을 시작으로 여러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보다 체계적으로 범위를 넓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대해 주세요.”
디자이너 답게 자신의 갈팡질팡 인생을 그래픽으로 표현해 준 최 매니저. 한국 후배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과 노하우가 한 장의 그림에 잘 담겨있다. [그림 최민이]

디자이너 답게 자신의 갈팡질팡 인생을 그래픽으로 표현해 준 최 매니저. 한국 후배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과 노하우가 한 장의 그림에 잘 담겨있다. [그림 최민이]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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