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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뉴스]짜장면 한그릇이 바꿨다, 9년간 공짜강의 '싸이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종도에 있는 한 과학 학원 정문에는 선한 영향력이라 쓰여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김남용 원장]

영종도에 있는 한 과학 학원 정문에는 선한 영향력이라 쓰여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김남용 원장]

인천 영종도에 있는 한 과학 학원 정문에는 ‘선한 영향력’이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선한 영향력은 전국 자영업자들이 결식아동들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인터넷 모임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파스타 가게를 하는 오인태(34) 대표가 지난달 시작한 프로젝트다. 당시 오 대표가 ‘결식아동들에게 꿈나무 카드만 보여주면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이에 동참하고 싶다는 연락이 줄을 이었고 선한 영향력 모임이 결성됐다.

이 학원 원장 '싸이코' 김남용씨(36)도 선한 영향력의 일원이다. 싸이코는 특별한 생각을 해보자는 뜻인 그의 옛 별명이다. 그는 우연히 오 대표의 글을 보고 수년간 결식아동을 도왔던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아서 선한 영향력에 가입했다고 한다. 김 원장은 2011년부터 결식학생에 무료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수업을 거친 결식학생들이 어느덧 50여명이다. 그는 지난해 6월 학원을 개원하면서 영종도 내 보육시설에 연락해 먼저 무료 강의를 제안했다.

야학에서 출발한 가르침의 꿈

김남용 원장은 야학과 학원 강사를 거치며 교육을 통해 행복을 전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사진 김남용 원장]

김남용 원장은 야학과 학원 강사를 거치며 교육을 통해 행복을 전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사진 김남용 원장]

대학에서 물리 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2007년 대학생 시절부터 학원에서 강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교육을 통해 행복을 전하는 일에 매력을 느낀 것은 야학에서 강의하면서부터다.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부모님을 위해 교육 기관을 찾던 중 야학을 접했다. 자신도 짧게나마 야학에서 만학도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전문 강사가 아니었음에도 어르신들은 무언가를 배운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고 한다. 배움에 절실한 이들을 돕겠다고 다짐한 그는 그렇게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결식학생에 마음 아파 시작

학원 강사 시절 김 원장은 짜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가던 한 학생을 봤다. 그 학생은 결식학생이었다. 당시 결식학생들은 결식아동 카드를 이용해서 4000원 한도 내에서 식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식점에서 결식아동 카드 사용을 거부했고 그는 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김 원장은 자신이 결식학생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무료 강의로 결식학생을 돕기로 했다.

그가 강사로 일하던 학원은 사정이 어려운 이들에게 지원금을 줬는데 그중에는 지원금만으로는 공부하기 힘든 아이들도 있었다. 그는 원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결식학생들에게 무료로 자신의 강의를 듣게 해주기로 했다. 같이 수업을 하고 밥도 먹으며 친해지니 닫혀있던 학생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속 이야기도 듣게 됐다. 한부모 가족에서 자란 아이들도 있었고 가출한 학생들도 있었다. 김 원장은 “어려운 아이들을 대할 때 너무 잘해주지도, 너무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철칙을 세웠다”며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수업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료 강의 계속할 것”

이제 김남용 원장에게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도 스승의 날 등에 종종 인사하러 학원을 찾아온다고 한다 [사진 김남용 원장]

이제 김남용 원장에게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도 스승의 날 등에 종종 인사하러 학원을 찾아온다고 한다 [사진 김남용 원장]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이제 대부분 대입을 앞두고 있다. 현재는 2명 정도가 주말에 학원을 찾아 무료강의를 듣고 있다. 김 원장은 “비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무료 강의를 하고 같이 밥도 먹는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책상에는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 과학이 점점 더 재밌어지는 것 같아요. 부족한 저희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해요. 더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할게요”라는 문구가 적힌 화분이 놓여 있었다. 김 원장의 제자들이 보낸 화분이었다. 더는 강의를 듣지 않는 학생들도 스승의 날 등에 종종 학원을 찾아온다고 한다. 김 원장은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깐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살길 희망한다”며 “학원 문을 닫기 전까진 무료 강의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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