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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히어로 액션인가, 평면적 애국주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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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7일 개봉한 ‘봉오동 전투’는 일제에 맞선 독립군의 승리를 그린다. 원신연 감독은 ’지금까지 영화에서 그려진 피해와 굴욕의 역사가 아닌, 저항과 승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사진 쇼박스]

7일 개봉한 ‘봉오동 전투’는 일제에 맞선 독립군의 승리를 그린다. 원신연 감독은 ’지금까지 영화에서 그려진 피해와 굴욕의 역사가 아닌, 저항과 승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사진 쇼박스]

전쟁 액션 대작 ‘봉오동 전투’가 7일 개봉했다. 총제작비 190억원. 올여름 한국영화 최대 규모다. 대한독립군 본거지였던 만주 봉오동 일대를 무대로, 일제의 침탈에 맞선 독립군의 역사 속 첫 승리를 그린 영화다. 유해진·류준열이 독립군 역 주연에 나섰다. 최근의 한일정세 속에선 단연 관객의 이목을 끄는 영화다.

영화 ‘봉오동 전투’ 엇갈린 시선 #일제강점기 승리 그린 역사극 #유해진·류준열 주연 190억 대작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추격대를 독립군은 험준한 지세를 이용한 전략전술로 맞선다. ‘세븐 데이즈’ ‘용의자’의 원신연 감독이 전투신을 실감 나게 구현했다. 시사회 반응은 엇갈렸다. “역사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란 원 감독의 연출 취지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민족정서에 기댄 ‘국뽕’ 콘텐트라는 비판도 나온다. 관객은 어느 쪽에 더 공감할까. 영화를 미리 본 두 평론가의 글을 전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강유정 “단순함의 카타르시스”

고백하자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봉오동 전투를 잘 몰랐다. 역사교육의 공백이거나 무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역사의 사각지대에 묻혀있던, 독립군 승리의 역사를 스펙터클의 무대로 끌고 온다. 고문과 투옥, 고통과 피해가 아니라 기관총과 질주가 난무하는 승리의 순간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그려낸다.

여러 면에서 이 영화는 미학적 판단보다는 윤리적·도덕적 공감에 호소한다. 미학적으로 따져보면 세계관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다. 미묘하거나 모호한 영역이 없다. 칼로 자르듯 선명하게 선과 악으로 나뉜 인물들은 평면적이며 기능적이다. 아군과 적군뿐인 세계에선 내적 갈등이나 모순·분열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일본군도 전형적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히어로 영화의 악당처럼 가차 없는 살인 기계로 묘사된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선언’과 ‘표어’를 동원해 일제의 악랄함을 고발하고 그에 대비되는 우리의 민족적 가치를 설파한다.

주인공 황해철(유해진)은 자신이 처치한 일본군의 피를 손바닥에 적셔 ‘대한독립만세’라고 벽에 적어 내린다. 독립군들은 감자 한 알을 십시일반 한 입씩 나눠 먹고, 어린 소녀를 지키려 다수 장병이 목숨을 건다. 나이어린 일본군 소년을 적군임에도 살려준다. 일본군에 대한 묘사는 그와 정반대다.

이러한 상투성·평면성에도 불구하고 이장하(류준열)의 살신성인 질주와 독립군의 승리가 장대하게 재현될 때 뭉클한 감동이 전달된다. 이는 역사적 실화에서 비롯되는 박진감이자, 민족이라는 공동체 정서가 빚어내는 화학작용이기도 하다. 영화의 단순한 선악구도는 오히려 감동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 척박한 아날로그식 전투는 절박함을 강조하고 산악지대를 활용한 액션의 새로움도 거든다.

‘봉오동 전투’는 민족 정서를 카타르시스의 원동력으로 활용한다. 공교롭게도 이 정서가 지금, 여기의 현실과 조우해 교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히어로 액션. 그 어떤 때보다 관객의 반응이 궁금한 작품이다.

강남대 국문과 교수, 영화평론가

허남웅 “반일에 묻힌 시대정신”

7일 개봉한 ‘봉오동 전투’는 일제에 맞선 독립군의 승리를 그린다. 원신연 감독은 ’지금까지 영화에서 그려진 피해와 굴욕의 역사가 아닌, 저항과 승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사진 쇼박스]

7일 개봉한 ‘봉오동 전투’는 일제에 맞선 독립군의 승리를 그린다. 원신연 감독은 ’지금까지 영화에서 그려진 피해와 굴욕의 역사가 아닌, 저항과 승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사진 쇼박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조치로 촉발된 한일 양국의 갈등은 두 나라의 비극적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우리 역사가 기록한 독립군의 첫 번째 승리로 의미가 남다른 봉오동 전투가 영화로 제작된 결정적인 배경이다.

갈등 그 자체는 여전해도 달라진 건 있다. 바로 일본 정부의 침략에 맞선 한국민의 대응 방식이다. 아베 신조 총리를 필두로 한 극우 정치인과 선량한 일본 시민을 구분했고, 대응의 차원을 민간에서 고도화했다. 일본 제품 불매나 여행 자제 등 정치권이 가장 아파할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을 향한 한국민의 ‘시대정신’은 극일(克日)이면서 더 나은 양국의 미래를 향한 관계 재정립이다.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전제로 한일 두 나라가 어깨동무하고 발전적 미래로 나가아야 한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이번 영화에도 있다. 황해철은 일본군 초소를 습격해 어린 유키오(다이고 코타로)만 포로로 잡아 일본군이 무고한 조선 민중을 학살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한다. 만행을 직접 보게 함으로써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게 하려는 의도다. 일본군에게 동생을 잃은 춘희(이재인)는 일본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닫는 유키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용서의 뜻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시대정신과 조응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시대정신을 부각하기보단 일본의 잔혹함을 강조하려는 연출에 더욱 노골적이다. 그런 의도는 첫 장면부터 고스란히 드러난다. 교활한 표정의 일본인이 먹을 것을 주겠다며 어린 조선인 형제에게 접근, 순박한 얼굴의 동생을 폭사시킨다. 슬로우 화면으로 잡아 오래간 노출하는 이 장면은 관객의 감정을 자극해 독립군이 일본에 품는 증오와 복수의 감정에 동참하도록 한다.

저항과 승리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건 한국민의 당연한 도리지만, 우리가 함몰되지 말아야 하는 건 감정만 앞세운 대응이다. ‘봉오동 전투’는 시대의 ‘감정’으로 진을 치고 시대의 ‘정신’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 승리, 봉오동 전투에서 얻을 것이 일본에 대한 우월감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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