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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인사청문회 당시엔 “상고허가제 가장 이상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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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법관은 취임 하루만 행복하고 다음날 부터 지옥이다”

<대법원과 함께하는 상고법원 이야기> 웹툰 중 일부. [사진 전주지법 블로그]

<대법원과 함께하는 상고법원 이야기> 웹툰 중 일부. [사진 전주지법 블로그]

판사 사회 우스갯소리로 회자하던 말이 어느 날 대법원 홈페이지에 등장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과 함께하는 상고법원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대법원 홈페이지 및 각급 법원 홍보 블로그 등에 실린 웹툰이다. 대법원이 전국 법원에 상고법원 홍보를 독려한 기록은 현재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서도 나타난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행정처 심의관들은 상고법원 어깨띠를 두르고 자전거를 타며 홍보에 나선 한 지방법원의 사례를 기억하거나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 설득전략’ 같은 문건을 직접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웹툰이 만들어진 2015년보다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는 더 늘어 어느새 4000건에 달한다. 전임 대법원장 재판에서 연일 상고법원 관련 내용이 나오는 시기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상고제도 개편 논의에 나선 것은 나날이 늘어나는 상고 사건을 더는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인식에서다. 다만 대법원은 예전처럼 상고법원이라는 하나의 대안만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상고허가제, 대법관 증원, 고등법원 상고심사부 등 여러 가지 선택지를 두고 전문가들과 논의에 나섰다.

15% 허가에 그쳤던 상고허가제…결국 폐지 

상고제도 개편 방안별 장단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고제도 개편 방안별 장단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고허가제는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재판하는 사건들을 선별적으로 고를 수 있는 제도다. 1981년 국가 보위 입법회의에서 만들어져 그해 3월 1일부터 1990년 8월 31일까지 운영됐다. 한충수 교수(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논문에 따르면 이 기간 상고허가 신청 건 2만6989건 중 허가된 건수는 4213건이다. 상고 허가율은 15%대로 국민 10명이 상고하면 2명도 허가받지 못한 셈이다. 상고허가제는 군사독재 시절 만들어져 민주적 정당성이 낮다는 점과 상고 허가율이 낮아 국민의 불만이 커지면서 변호사 협회 등을 중심으로 폐지 논의가 나왔고 1990년 폐지됐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제도 중 상고허가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상고허가제 도입에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시각을 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김문현 교수(이화여대 법전원)는 “국민은 대법원에서 재판받고자 하는데 이를 광범위하게 제한하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며 “장기적으로 상고허가제가 도입되더라도 하급심이 강화되지 않는다면 신뢰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인호 교수(중앙대 법전원)는 “헌법에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는 세 번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아닌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며 “심급이 늘어나 소송이 길게 이어질수록 소송 비용 등을 감당할 능력이 부족한 이가 패소해 오히려 불공정한 게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사건이 상고심까지 가는 것이 오히려 국민에게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고허가제 시행 중인 다른 나라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고허가제 시행 중인 다른 나라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법원행정처 역시 상고허가제 도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행정처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 폐지됐다고 다시 도입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다”라며 “해외 국가에서도 상고허가제로 의미 있는 사건만 최종 법원 판단을 받는데, 우리는 대법원에 일단 상고하고 대다수는 거절당하는 식으로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짚었다.

고등법원 상고부ㆍ상고심사부 설치…상고 법원 논의까지

우리나라 상고제도 변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리나라 상고제도 변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고등법원 상고부 제도와 고등법원 상고심사부 설치 방안도 논의된다. 고등법원 상고부는 지역별 고법에 상고부를 설치해 대법원이 담당하는 상고 사건과 고법에서 담당하는 상고 사건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운영된 적 있는데 당시에는 전국 고등법원에 4개의 상고부가 설치됐다.

고등법원 상고심사부 제도는 현 20대 국회에 발의된 상고제도 개편안이다. 18대 국회 사개특위에서는 전국 5개 고등법원에 8개 상고심사부를 설치해 상고심사를 전담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고법 상고부 제도와 달리 고법 상고심사부는 상고 여부를 심사하기만 하지 고법이 상고심을 직접 심리하지는 않는다.

전병서 교수(중앙대 법전원)는 “고법 상고심사부를 도입할 경우 고등법원 부담이 지금보다 늘고 각 지역 고등법원에서 대법원에 보내는 사건이 통일된 기준으로 정해질 수 있느냐는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상고법원 제도는 이런 상고 기준의 일관성 논란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의 상고법원을 두는 방안을 고려했다. 대법원이 모든 상고사건을 사전 심사해 사건을 대법원으로 보낼지 상고법원으로 보낼지 결정하는 방식이다.

대법관 수 늘리자는 논의도 

 앞서 논의된 상고제도 개편 방안이 대법원에 올라가는 상고심 수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뒀다면 대법관 증원은 방향이 조금 다르다. 상고심을 심리할 대법관을 늘려 대법관 1인의 업무 과중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18대 국회 사개특위 소위는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고 대법원을 1부와 2부로 구성해 각 부에서 전원합의체를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전원)는 논문에서 상고법원제의 대안으로 “하급심을 꾸준히 강화하며 대법관 수를 늘려 대응하는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밝혔다.

반면 섣부르게 대법관을 늘리면 전원합의체 판단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소부 중심으로 대법원 판결이 이뤄지면 대법원 판결 사이 모순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대법원이 최고법원으로 기능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룡 교수(경북대 법전원)는 “판사 수를 늘리기보다는 무조건 상고하는 분위기를 바꾸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다만 대법원이 상고제도 개편에 나섰지만, 실제 국민의 관심을 어떻게 끌지는 큰 과제다. 상고법원 도입 추진이 한창이던 2015년 한 언론사가 국민 1000명에게 상고법원을 아는지 물었더니 10명 중 9명이 "잘 모른다"고 답했다. 당시 대법원에서 공청회 등 활발한 홍보활동 벌였지만, 공감대 얻기에는 실패한 것이다.

이수정·백희연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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