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데이터 경제 3법’ 낮잠…데이터 산업도 일본에 뒤처질라

중앙일보

입력 2019.08.0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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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영호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한국교통대 총장

김영호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한국교통대 총장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은 ‘데이터 고속도로’ 구축을 선언하면서 데이터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11월에는 후속 조치로 속칭 ‘데이터 경제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데이터 산업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화되는 듯했다.

20여 개 개정안 국회 문턱 못넘어
데이터 기반 혁신성장 길 터줘야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20여개의 법 개정안은 지금까지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 핵심인 개인정보보호법만 소관 법안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했을 뿐 나머지 두 법안은 단 한 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데이터 기반의 혁신성장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국회의 무관심 때문에 속도와 타이밍을 잃어가고 있다.

사실 데이터 3법 개정안은 쟁점이 많지 않은 법안이다. 정반합의 변증법 논리로 보면 그 입법 목적이 개인정보 보호(正)와 활용(反)의 균형과 조화(合)에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보호 중심의 정책을 펼쳐왔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건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규제 강화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데이터 기반의 신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데이터 활용의 필요성이 커졌음에도 강력한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산업계는 한숨짓고 있다. 비현실적 규제와 분산된 정책 집행 체계 때문에 개인정보 자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데이터 3법 개정안은 보호와 활용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데이터의 활용도는 높이면서 국민의 개인정보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고자 한다. 가명 정보, 즉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안전하게 처리한 정보를 명시적으로 도입하고 그 활용범위를 확대한다. 가명 정보를 상업적 목적의 시장조사나 통계작성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분산된 개인정보보호 체계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정보보호 기능이 분산돼 초래되는 규제 경쟁을 없애고 이중·삼중의 감독에 따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통합감독기구가 개인정보의 안전한 보호라는 전제조건하에 데이터가 활용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해야 한다.

이는 EU GDPR(유럽 일반개인정보보호 규정)의 적정성 결정 획득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독립성 확보가 EU 적정성 평가의 핵심 요건인 까닭이다. 적정성 결정을 획득하지 못한 국가의 기업은 GDPR이 요구하는 별도의 안전조치를 자력으로 준수해야 한다. 그나마 대기업은 자체 예산을 확보하고 전문인력을 충원할 여력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의 유럽 진출은 어려워진다. 위반하면 상당한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데이터 경제의 패권을 놓고 지금 선진국들은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EU는 GDPR 시행으로 역내 단일시장 육성에 집중하고 있으며, 미국은 자국의 플랫폼 기업을 위해 데이터 이동의 자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한발 앞서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해 지난 1월 EU로부터 적정성 결정을 획득했다. 한국은 지난 2007년 일본과 같은 시기에 우선 협상 대상국으로 선정됐는데도 국가가 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꼴이다. 미·중 간, 한·일 간 무역 전쟁이 장기화되는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데이터 산업마저 일본에 뒤처지게 생겼다.

국가기관은 한국 기업이 유럽시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넋 놓고 지켜봐서는 안 된다. 지금이 골든타임이고, 그 해법의 열쇠는 국회와 정부가 쥐고 있다. 하루속히 데이터 경제 3법이 개정돼 개인정보의 안전한 보호 아래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데이터 강국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김영호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한국교통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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