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 판에 묘수 세번 나오면 진다'는 바둑 격언, 왜 그럴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32)

영화 '기생충'은 기택네 아들인 기우(사진 오른쪽)가 발휘하는 묘수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우는 부잣집 박 사장네서 일하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자기 부모님과 여동생을 들인다. 기우와 그 가족이 둔 묘수는 이들이 차원이 다른 삶을 누리게 해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은 기택네 아들인 기우(사진 오른쪽)가 발휘하는 묘수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우는 부잣집 박 사장네서 일하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자기 부모님과 여동생을 들인다. 기우와 그 가족이 둔 묘수는 이들이 차원이 다른 삶을 누리게 해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살아가면서 묘수를 내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묘수란 신통한 효과를 가져오는 절묘한 수를 말한다.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녔는데도 차도가 없다가 어떤 민간요법으로 치료가 되었다면 그것은 묘수라 할 만하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은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의외로 성과가 있었다면 역시 묘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묘수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둑에서는 묘수보다 정수를 둘 것을 권한다.

묘수는 상식을 넘어선 곳에

일반적으로 묘수는 상식을 넘어선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 상식으로는 묘수라고 생각되지 않은 곳에 묘한 수단이 숨어있다는 얘기다. SNS의 대명사 격인 페이스북을 보자. 페이스북은 2004년 19살 하버드 대학생 마크 저커버그와 에두아르도 세버린이 학교 기숙사에서 만든 사이트다. 페이스북은 저커버그가 다녔던 학교에서 학기가 시작될 때 친목을 다지기 위해 학생들의 얼굴과 프로필을 적어 공유하던 출석부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하버드 학생만 이용하던 사이트였던 페이스북이 주변의 학교로 퍼져나가면서 학교 네트워크 사이트로 유명해졌다. 이후 일반 사용자까지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도록 확대됐다. 페이스북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2017년 미국의 상장기업 중 시가총액 6위에 해당하는 거대 기업이 됐다. 대학생이 창업한 프로젝트가 그야말로 대박을 낸 묘수가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묘수는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나오는 수가 많다.

바둑에서도 묘수는 다 죽어가던 대마를 회생시킬 때 사용한다. 또한 상대방의 대마를 멋진 수로 잡을 때도 묘수라고 한다. 이런 묘수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 누구나 상쾌함을 느낀다. 바둑의 고수도 묘수를 좋아하긴 한다. 바둑기술 분야에 ‘사활 묘수풀이’라는 부문도 있다. 프로가 되려면 이런 묘수를 모두 익혀야 한다. 하지만 프로기사는 바둑을 둘 때 묘수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바둑기술 분야에는 '사활 묘수풀이'라는 것이 있다. 프로는 모든 묘수를 다 익히지만, 즐겨 쓰지는 않는다. 사진은 한 청소년수련원의 방과 후 아카데미 바둑교실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묘수풀이 질문에 손을 드는 모습. [중앙포토]

바둑기술 분야에는 '사활 묘수풀이'라는 것이 있다. 프로는 모든 묘수를 다 익히지만, 즐겨 쓰지는 않는다. 사진은 한 청소년수련원의 방과 후 아카데미 바둑교실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묘수풀이 질문에 손을 드는 모습. [중앙포토]

바둑 격언 중에 ‘한 판에 묘수 세 번 나오면 진다’는 말이 있다. 얼핏 보기엔 이상한 격언이다. 묘수가 한 방만 나와도 효과가 클 텐데 세 번이나 나왔다면 얼마나 유리하겠는가. 그런데 묘수를 세 번 두면 진다니. 그 뜻은 이렇다. 바둑 한판을 두면서 묘수를 세 번씩이나 두어야 했다면 그 바둑은 정상적인 바둑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인생에서도 대박을 세 번씩이나 내면서 살아왔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으로 살지 않았다고 하겠다.

고수의 시합에서 묘수를 세 번 둔 케이스가 있다. 옛날 일본에서 명인기소라는 바둑 관직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절 ‘전투 13단’으로 불린 당시 최고수 죠와 명인이 라이벌 가문의 제자 인데쓰를 꺾었다. 그때 죠와 명인은 세 개의 묘수를 두어 이겼고, 패한 인데쓰는 몇 달 후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죠와는 제자들에게 그 바둑을 종종 보여주며 묘수의 의미를 설명하곤 했다. 그런데 15살 막내둥이 제자가 뒷전에서 죠와가 둔 수를 지적했다. “스승님이 잘 두셨지만, 실은 초반에 잘못 둔 수가 있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 제자가 죠와 명인에게 일러바쳤다. 새파란 제자가 스승이 둔 수를 비판한다면 파문감이 분명했다.

그러나 죠와는 제자를 혼내지 않았다. 막내 제자가 지적한 것이 타당했기 때문이다. 그 제자가 말한 대로 정수를 두었다면 고심하며 억지로 묘수를 내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죠와 명인은 그 제자가 바둑에 재주가 있다고 보아 훗날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묘수보다 정수 추구해야

바둑에서 신통한 묘수를 좋아하지만 묘수보다 정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봤다. 인생에서도 특별한 묘수를 찾기보다 정수로 임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수로 두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묘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