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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사이에 두고, 강경화·고노 악수도 안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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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호 05면

[한·일 대충돌]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양팔을 뻗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에게 기념촬영 포즈를 권하고 있다. 이날 한·일 외교장관은 굳은 표정에 악수도 하지 않았다. [뉴스1]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양팔을 뻗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에게 기념촬영 포즈를 권하고 있다. 이날 한·일 외교장관은 굳은 표정에 악수도 하지 않았다. [뉴스1]

2일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국가 배제 결정 이후 8시간 만인 오후 6시30분쯤(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한·일은 마주 달리는 열차였다. 회담 자체가 일본 각료회의 결정 이후로 잡혔을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였다.

일본 화이트국가 한국 배제 충돌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30분 대화 #강경화 “미국 많은 우려 갖고 있어” #아세안+3 회의서도 팽팽한 설전 #“한국 뺄 게 아니라 아세안 넣어야” #싱가포르 외교장관, 고노에 일침

이날 회담장에 들어간 세 장관은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간단하게 기념촬영을 한 뒤 각자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섰다. 폼페이오 장관이 웃으며 양팔을 뻗기도 했지만 두 장관은 악수도 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31일 방콕으로 오는 기내에서 “한·일 양국이 접점을 찾는 것은 양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중요하다. 우리가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방콕에서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다. 회담 직후 강 장관은 “미국도 상황이 이렇게 된 데 대해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많은 우려를 갖고 있다”며 “폼페이오 장관도 ‘앞으로 어렵지만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일 외교장관은 앞서 이날 오전 일본이 한국의 화이트국가 배제를 발표한 지 1시간 뒤에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1차로 정면충돌했다.

강 장관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오늘 아침 우리나라를 수출 우대 조치를 받는 무역 파트너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한 일본의 결정에 대해 여러분의 관심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며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방식으로 취해진 이번 조치에 대해 ‘엄중한 우려(gravely concerned)’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날 모두발언은 각국 취재진 수백 명이 모인 센타라 그랜드 컨벤션 센터 안에 있는 미디어센터에 생중계됐다. 다자회의나 국제기구에서 ‘엄중한 우려’라는 표현은 매우 강한 유감을 표명할 때 쓰인다. 2017년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을 당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서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고 언급된 적이 있다.

강 장관 다음 순서로 발언한 고노 외상은 반발했다. 그는 “강 장관 불만의 원인이 뭔지 모르겠다”고 받아쳤다. “우리의 아세안 친구들로부터 우리의 수출 관리 조치에 대해 어떤 불만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은 예전에도 우리의 아세안 친구들과 동등하거나 더 유리한 지위를 누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다.

고노 외상의 발언은 화이트국가 우대는 극소수 국가에만 부여하는 특혜적 지위로, 한국 제외는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일 뿐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라는 기존 논리를 되풀이한 것이다. 강 장관의 문제 제기를 하나의 ‘불만’으로 치부한 셈이다.

한·일이 충돌하자 이후 비공개 세션에선 다른 참가국들까지 논쟁에 가세했다.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솔직한 얘기를 한번 해보겠다. 화이트국가를 줄이는 게 아니라 늘리는 게 맞다. 한국을 뺄 게 아니라 아세안을 넣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발라크리슈난 장관의 발언에 상당히 좋은 영감을 받았다. 아세안과 우리 세 나라는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데 이런 문제가 생겨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노 외상도 가만있지 않았다. 재차 발언권을 얻어 “한국이 (1965년 체결한) 기본조약을 다시 쓰려고 한다”고 비난한 뒤 “한·일 간에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 ▶한·일 기본조약 관련 문제 ▶수출 통제 문제 등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는 모두 별개의 이슈”라고 강조했다. 수출 규제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날 세션이 끝날 때까지 이례적으로 강 장관은 세 차례, 고노 외상은 네 차례에 걸쳐 잇따라 발언하면서 치고받았다. 그러느라 1시간30분으로 예정됐던 회의 시간을 훌쩍 넘겼다.

◆한국민, 더 이상 일본을 우호국으로 생각 안 해=한·일 충돌은 서울에서도 이어졌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이날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일본의 결정에 가장 강력한 수준의 항의를 전달한다”며 “우리 국민은 보복적인 경제 조치를 취하는 일본을 더 이상 우호국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가미네 대사는 “양국 간 어려운 상황은 한국에서 지난해 여러 문제(위안부 합의 무효화,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가 발생한 게 원인”이라며 “신뢰 관계 회복을 위해 한국 정부가 잘 대응해 주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답했다.

방콕=유지혜 기자, 서울=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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