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꾸하는 방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개마고원 트레킹 한번 하게 해주시죠. 판문점 정상회담 연회장의 대통령 건배사였다. 소원 표현이자 살가운 친근감의 요청이었다. 북한산부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구간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이 이 땅의 등산교도들이다. 그들이 순간 침을 꼴깍 삼켰을 것이다. 나도!

갈마관광지구 사업의 위기 #중요한 건 대책 아닌 철학 #파괴 아닌 건설이 우리 미래 #그런데 강원도는?

그런데 북한이 생뚱맞게 미사일을 쏘았다. 첨단 공격형 무기 반입하고 군사연습 강행하려 한다며 남한 정부에 경고장을 붙여 보냈다. 이전 시대였다면 무력 과시로 응징해야 한다고 여론이 시끄러웠겠으나 지금 남쪽의 대꾸는 비교적 조용하다. 거듭되는 위협에 이골이 나기도 했거니와 일본과의 외교분쟁이 훨씬 엄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조선 당국자들이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라는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정도도 되었기 때문이겠다. 외교전문가가 아니어도 북한의 문장은 위협보다 불평으로 들린다. 절실함이 읽히는 독법의 단서로 건설사업이 하나 보인다.

지금 북한의 최대 역점 건설사업은 원산 갈마관광지구 조성이다. 이건 남쪽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국책사업이라면 예비타당성 검토에서, 민간사업이라면 사업성 검토에서 반려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가 너무 크다. 견제장치 없는 사회는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류경호텔 건설사업 중단에서도 별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사업 시작의 간판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행복한 인민낙원 조성’이었다. 최고존엄의 끝없는 인민 사랑 앞에 사업성이라는 썩어빠진 자본주의적 잣대는 위험한 언동이겠다. 물론 이면에는 관광사업 통한 경제난 타개 의도가 있겠고.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여명거리를 지났다. 70층 건물의 골조 완성에 74일, 외장 타일 공사 마무리에 13일 걸렸다고 자랑하는 거리다. 남쪽이라면 부실공사 여부로 관계자 감사 이어지고 안전문제 점검하라고 입주자들이 머리띠 두를 일이다. 갈마관광지구 조성사업도 그렇게 만리마 속도로 다그쳤다. 붉은 기 흔들며 노래하는 선동대 너머, 밤새 밝힌 횃불 아래, 오로지 인간의 등짐으로 시멘트포대 나르는 군인돌격대가 만리마 역군의 모습이었다. 단열, 장애인, 내구성은 끼어들 단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 빨간 불이 켜졌다. 준공 연기. 최고존엄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돌격대의 밤샘공사도 건설 자재가 있어야 가능하다. 자력갱생 구호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균열은 방치하면 성장하고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위험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눈치껏 도와줬어야 할 남쪽 정부는 경제제재 항목도 아닌 관광사업 재개에 무관심하고 스텔스전투기를 구매했다더라.

경험이 있다. 금강산 방식은 남쪽 자본이 건물 지어주고 남쪽 관광객이 가서 이용하는 것이다. 원산해변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남쪽에서 찾을 수 없는 절경이다. 그러나 짓고 있는 건물들은 별로 기대할 수준이 아니다. 전체 건물 배치방식은 생경하다. 게다가 최고존엄의 현지지도가 수시로 계획을 흔들고 바꿨다. 그래서 안타깝다. 불경기라는 남한 건축이 도와주면 딱 좋을 일이기는 하다. 비행기 대신 파리가 날아다닌다는 양양공항에서 갈마비행장 직항도 의미 있겠다.

질문은 결국 강원도로 향한다. 북쪽의 관광자산이 남쪽 강원도의 보완재인지 대체재인지. 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강원도였다면 분단의 최고 수혜자는 사실 강원도였다. 북쪽이 막힌 덕에 자연관광산업의 동력을 갖춘 것이다. 분단이 아니었다면 동계올림픽 평창 개최가 국민 동의를 얻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엉뚱한 일은 설악산에서 벌어졌다. 설악동이 초토화된 것은 미사일 탄착이 아니고 관광객 급감 때문이었다. 통일까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북한과의 관광교류가 시작되면 가장 긴장해야 할 곳이 강원도다. 여름휴가를 태백산맥 아니라 개마고원으로 가고 싶다고 대통령도 국민대표로 선언해버렸다. 그물에 걸린 명태도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을 하고야 죽겠다는 것이 가곡 ‘명태’의 가사다. 금강산·원산·마식령이 설악산·속초·대관령의 대체 휴가지가 될 것이다. 자연관광 넘어선 문화관광으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강원도의 미래는 밝지 않다.

대통령의 평양 방문 즈음 미국 피츠버그의 유대인 공회당에서 총격 사건으로 11명이 사망했다. 미국 대통령은 무장병력을 배치했어야 했다고 트위터에 썼다. 이에 대해 유대인 랍비는 자신들의 공회당은 낯선 자들을 환대하는 공간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은 대책을, 랍비는 철학을 이야기한 것이다. 대책은 수시로 바뀌나 철학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 결과가 신뢰다. 지도자는 장사꾼 아니고 철학자여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 이래의 가치다. 북한이 미사일로 위협이라고 선언했을 때 반격이라고 대꾸할 일은 아니다. 분명 포용과 협력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책 아니라 철학이다. 미래는 파괴 아닌 건설에 가까워야 한다.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개마고원 트레킹 한번 하게 해주시죠. 대통령 발언으로 남쪽 등산교도들이 침을 흘리는 순간 북쪽 참석인사들은 땀을 흘렸을 일이다. 거, 트레킹이라는게 뭡네까?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