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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장비 없이 점검 작업…목동 빗물펌프장 인재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1일 갑작스런 폭우로 작업자들이 고립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펌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위해 크레인을 이용해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갑작스런 폭우로 작업자들이 고립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펌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위해 크레인을 이용해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발생한 사망·실종 사고에 대해 안일한 대응이 빚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오전 7시40분쯤 작업자들은 터널 내 전선 수거 방법을 파악하기 위해 지하 40m 깊이의 터널에 들어갔다가 기습 폭우로 수문이 자동 개방되면서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해 고립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수문이 열리면서 터널 안으로 6만여㎥의 물이 흘러내렸고 수심은 4m 내외로 급상승했다. 이 가운데 협력업체 직원인 구모(66)씨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함께 작업하던 시공사 직원 안모(30)씨와 미얀마 국적의 협력업체 직원(20대) 등 2명은 실종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상적인 점검 업무차 현장에 투입됐다가 순간적으로 빗물이 불어나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 관계자는 “물이 70%가 차면 자동으로 배수가 되는 구조인데 현재 시운전 기간이라 배수 수위를 50%로 잡아놨다”며 “기습적인 강우로 빗물저장창고 50%가 차 수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추가로 발주한 차량용 엘리베이터인 카리프트를 제외한 나머지 공사는 완료된 상태로 현장은 시운전 중이었다.

집중 호우가 쏟아졌지만 현장에서는 안전장비 없이 위험한 작업을 강행했다. 김병식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교수는 “수로 내부에는 안전장치가 없어 갑작스럽게 쓸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비가 내리면 급격하게 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애당초 호우 특보가 내리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고 현장에는 튜브 등 최소한의 안전 장비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시공사와 감리사 등에 태풍 다나스와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20일까지 서울 경기 지방에 10~70㎜의 강우가 예상되므로 터널 내 작업자 통제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난 이날 서울 양천구의 강수량도 총 47㎜였지만 작업자의 통제가 없었다.

현장의 안전 대처도 허술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건설사업을 관리감독하는 감리사 등급을 한 단계 하향 조정한 사실도 드러났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빗물저류배수시설 등 방재시설 확충 공사로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에서 2013년 발주한 사업이다. 당초 지난 6월 30일 완공 예정이었다. 현대건설이 시공을, A사 외 4개 기업이 감리를 맡았다. 하지만 카리프트 설치 등 추가 발주가 생기며 공사 기일은 올해 12월 15일까지 연장됐다.

공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감리 업체들은 감리사인 상주 기술인들의 등급을 한 단계씩 낮췄다. 책임 감리원은 수석감리사에서 감리사로, 전기 감리원은 특급감리사에서 고급감리사로, 건축·기계 감리원은 감리사에서 감리사보로 변경했다. 등급별로 임금이 다른 감리사 특성상 이러한 등급 조정으로 총 2억원의 예산 절감이 가능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 남아 있는 공사는 기존 터널 공사보다 규모가 축소돼 감리 범위도 자연스럽게 줄인 것”이라며 “효율적인 예산 집행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시내 민간 435곳, 공공 112곳 등 모든 공사장에 대해 집중 안전점검을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우기에는 월 2회 이상 안전교육을 시행하고 작업 전에는 일기예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한다. 강수 확률이 50% 이상이거나 맨눈으로 하늘에 먹구름이 보이면 작업을 중단하고 즉시 철수해야 한다.

박해리·윤상언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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