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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펌프장 참사···물 쏟아지는데 경고음도 구명조끼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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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폭우에 3명이 고립돼 한 명 사망, 2명이 실종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 지하 배수터널의 지난해 공사현장 모습.[중앙포토]

31일 폭우에 3명이 고립돼 한 명 사망, 2명이 실종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 지하 배수터널의 지난해 공사현장 모습.[중앙포토]

31일 오전 갑작스런 폭우에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 내 지하 배수터널 공사현장에서 3명의 작업자가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60대 협력업체 작업자 한 명이 숨지고, 외국인을 포함한 2명이 실종됐다. ‘빗물 32만t이 떨어져도 문제없다’던 시설에서다. 작업자들은 호우 주의보 발령 20분 전에 일상적인 점검을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변을 당했는데 터널 안 작업자에게 이를 알릴 연락시스템 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호우주의보 20분 전 들어갔다 변 당해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24분쯤 목동 빗물펌프장 지하 배수터널 유지관리용 수직구 인근에서 작업자 구모(66)씨 등 3명이 고립됐다. 수직구는 지상에서 45m 깊이다. 출동한 구조대원에 의해 구씨가 발견됐지만 심정지 상태였다. 그는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구씨와 같은 협력업체 직원인 미얀마 국적의 A(20대), 시공사인 현대건설 직원 안모씨 등 2명은 실종된 상태다.

지하 배수터널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양천구 신월동을 거쳐 목동 빗물 펌프장까지 총 길이가 4.7㎞에 이른다. 터널 지름만 5.5~10m다. 구씨와 A는 먼저 이날 오전 7시10분쯤 배수터널로 진입했는데 두 곳의 저(低)·고(高)지 수직구 문이 각각 30분, 34분 뒤 열렸다. 지상의 하수·우수가 들어오는 수직구 문은 일정량의 물이 모이면 작동하는 자동 개·폐 시스템이다.

중부지방에 기습적인 폭우가 내린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근로자 3명이 고립돼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지하 40m 저류시설 점검을 위해 내려갔다가 올라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상조 기자

중부지방에 기습적인 폭우가 내린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근로자 3명이 고립돼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지하 40m 저류시설 점검을 위해 내려갔다가 올라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상조 기자

터널 속 작업자 연락 못 해 추가로 들어가  

이날 호우 주의보는 구씨가 터널로 들어간 이후인 오전 7시30분 발령됐다. 1분 뒤 수직구 문 자동개방 알림이 양천구청에 전해졌다. 공사현장엔 이로부터 7분 뒤 전파됐다. 구씨에게 문 개방 상황을 전파하기 위해 시공사 직원인 안모(실종)씨가 들어갔다.

이후 순간적으로 배수터널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구씨 등이 미처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서울시 측의 설명이다. 터널은 물을 흘려 보내야 해 빗물펌프장 쪽이 수직구 쪽보다 경사가 상대적으로 낮은데 고립 당시 이들이 머물렀던 유지 관리용 수직구 인근은 수심이 3.5~4m에 이르렀다.

31일 갑작스런 폭우로 작업자들이 고립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펌프장을 찾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장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우상조 기자

31일 갑작스런 폭우로 작업자들이 고립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펌프장을 찾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장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우상조 기자

터널 안과 밖 연락 통신시스템 부재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구씨 등은 수직구 개폐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배수터널 안에 이와 관련한 외부 통신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경고음을 내지도 않는다. 아파트 13층 높이 지하라 무전도 닿지 않는다. 구씨·A, 이들에게 위험을 알리려 한 안씨가 터널 안에서 만났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배수터널은 현재 시범운영 기간 중으로 정식 운행을 하고 나면 경고시스템 등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구씨 등은 구명조끼도 없이 일상점검에 투입됐다. 다만 일상 점검에 들어가기 전 현장 안전수칙 확인절차는 진행했다고 한다.

구청-시공사, 책임 떠넘기는 모습도 

사고 관련 브리핑 자리에서 양천구와 시공사 현대건설 측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듯한 모습을 보여 실종자 가족으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작업자가 배수터널에 있는데도 수문을 닫지 않는 부분을 놓고 현대건설 측은 관계자는 “수문을 닫을 권한이 없고 작동법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양천구청 측은 “권한이 없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며 “공사 준공 전이라 구와 현대건설이 시설 운영권을 공동으로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를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은 “(수문을 닫아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따로 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사 중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비한 매뉴얼도 없다고 한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한무영(건설환경공학부) 서울대 교수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지하에 건설하는 대규모 저류 터널이 시민의 안전을 담보로 공학적 분석 등 없이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2013년 7명 사망 노량진 배수지 판박이"  

이날 사고현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여러분께 사과 말씀드린다”며 “실종자 찾는 게 급선무라 (이 부분에 집중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도 “사고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책임을 가릴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목동 사고가 2013년 발생했던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와 판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배수지 내 상수도관 공사 중 폭우로 불어난 한강 물이 범람해 작업 중이던 인부 7명이 수몰됐다.

김민욱·이후연·신혜연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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