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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 일제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 비판

중앙일보

입력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중앙포토]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중앙포토]

현직 부장판사가 일제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31일 부산지법 등에 따르면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구 공개로 A4용지 26장 분량 게시물을 올렸다.

부산지법 김태규 부장판사 SNS에 장문의 게시물 올려 #“대법원이 추상적인 법리 적용해 패소 장벽 쉽게 넘어” #파문 일자 김 판사 “개인적 궁금증에 글 올린 것”

김 부장판사는 “외교분쟁은 양국 정부 간 충돌에서 발생하는데, 법원의 판단이 일부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이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며 글을 시작했다.

그는 2012년 신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지난해 최종 확정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나라면 아마 최초 제1심과 제2심판결(원고 패소)처럼 판단하였을 것”이라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이 소멸시효, 법인격의 소멸, 기판력(동일한 판결에 대해 다시 재판하지 못하도록 생기는 효력)의 승인이라는 세 가지 장벽을 어떻게 넘기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대법원은 3가지 장벽을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서양속(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 위반 금지의 원칙과 같은 보충적인 원칙들로 쉽게 넘어 버렸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이 사건 청구권은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4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민법 제766조에서 정하는 불법행위의 소멸시효 기간을 훌쩍 넘겼다. 게다가 신일본제철은 후지 제철 등과 합병한 회사로서 구 일본 제철과 다른 회사인 만큼 당사자성이 인정되지 않고, 이 사건 소송은 일본에서 확정돼 기판력이 생긴 상태다.

그는 “법 규정과 법이론을 무력화시키는 손쉬운 방법이 신의칙·공서양속과 같이 추상적이고 애매한 원칙들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민법 법리들을 보충적인 법리로 허물어버리면 앞으로 많은 소송당사자가 법원을 찾아와 자신들에게도 이러한 법 적용을 하는 특혜를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청구권에 관해 협정하는 과정에서 요구한 ‘8개 항목’에 대한 견해도 내놓았다. 그는 “8개 항목에 피징용 한국인의 청구권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반영한 것이 청구권협정”이라며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를 추구한다면 이미 개인의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해결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판결을 읽어보면 들인 노고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징용자들에 대한 연민 및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판결에 반영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충정도 읽힌다”면서도 “건국하는 심정이 들 정도의 논리 전개를 할 필요가 있었다면 그 논리 전개가 자연스럽거나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글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자 그는 “대법원 판결에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 등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작성해 친구공개(비공개)로 페이스북에 게시한 것”이라며 “논란을 키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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