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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누리양 사라진 520m 산길…경사 완만, 갈림길은 1곳 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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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누리양이 지난 23일 일행들과 모여 물놀이를 했던 장소. 최종권 기자

조은누리양이 지난 23일 일행들과 모여 물놀이를 했던 장소. 최종권 기자

지난 30일 오후 충북 청주시 가덕면 내암리의 한 계곡. 청주 시내(충북도청 기준)에서 약 20㎞ 떨어진 이곳은 무심천 발원지가 있는 외진 산골이다. 포장도로 끝에 이르자 얕은 냇가와 나무 그늘이 보였다. 물을 건너면 산길이 시작된다.

폭 3m의 완만한 임도…인적 드물지만 트럭·SUV 통행 #길 주변 수풀·나무 우거져 산속으로 들어가기 어려워 #갈림길서 헤맸다면 다른 산으로 갔을 가능성 #실종 장기화 범죄가능성 커져…경찰 다녀간 차량 추적

지난 23일 실종된 조은누리(14)양은 산에 오르기 전 일행과 함께 이곳에 돗자리를 펴고 물놀이를 했다. 한 주민은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이라 시내에서 더위를 식히러 온 사람들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냇가에서 물놀이를 한다”며 “하도 외진 곳이라 왕래가 잦은 편은 아니다”고 말했다. 계곡 바로 옆에는 생수 공장이 있었다. 공장 창고를 오가는 트럭이 많았다.

조양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경찰과 소방, 군 장병 300여 명이 매일 수색에 나서고 있지만 흔적을 찾지 못했다. 산악 수색에 특화된 군 특공부대원 250여 명이 전날 오후 2시부터 계곡과 수풀, 비탈길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과는 같았다. 수색은 9일째에 접어들었다.

조양은 실종 당시 “산에서 먼저 내려가겠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경찰에 따르면 조양은 23일 오전 9시 30분 내암리 계곡에 도착했다. 조양은 이곳에서 돗자리를 펴고 어머니와 공부방을 다니는 친구, 다른 부모 등 10명과 40여 분간 도시락을 먹으며 물놀이를 했다.

지난 23일 가족과 함께 등산을 나섰다가 청주 가덕면 무심천 발원지 일대에서 실종된 조은누리양. [연합뉴스]

지난 23일 가족과 함께 등산을 나섰다가 청주 가덕면 무심천 발원지 일대에서 실종된 조은누리양. [연합뉴스]

조양 일행은 23일 오전 10시 15분쯤 무심천 발원지가 있는 산 정상 부근까지 등산하기로 한다. 조양의 아버지 조한신(49)씨는 “학부모들이 청주의 젖줄인 무심천 발원지를 한 번 보고 가는 것이 교육 차원에서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며 “딸은 약 520m 정도 올라가다가 ‘벌레가 많아 더는 못 가겠다’고 아내에게 말한 뒤 혼자서 산에서 내려갔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조양은 오전 10시 40분쯤 일행과 헤어져 홀로 산에서 내려왔다. 나머지 일행은 무심천 발원지까지 680m 정도 산행을 더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 가운데 남자 아이 2명이 오전 11시쯤 먼저 산에서 내려갔고, 조양의 어머니 등 나머지 일행들은 낮 12시쯤 하산했다. 남자 아이들은 “내려왔을때부터 조양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물놀이했던 장소로 당연히 내려가 있을 줄 알았다”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조양이 혼자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520m 산길은 폭 3m 정도의 임도(林道)다. 승용차가 다니기는 쉽지 않지만, 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은 통행이 가능했다. 경사는 대체로 완만했다.

조은누리양이 지난 23일 오전 10시40분 혼자서 산을 내려왔던 지점에 노란 손수건이 걸려있다. 최종권 기자

조은누리양이 지난 23일 오전 10시40분 혼자서 산을 내려왔던 지점에 노란 손수건이 걸려있다. 최종권 기자

내려오는 길목에 갈림길은 한 곳이다. 하산 방향을 기준으로 좌측은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우측이 조양의 목적지로 가는 길이다. 조양이 길을 잘못 들었더라면 이 갈림길에서 헤맸을 가능성이 높다. 현장을 둘러본 한 전문 산악인은 “시야가 트이는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지는 길 양쪽으로 수풀이 우거진데다 나무가 가로막고 있어 길을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가긴 힘들어 보인다”면서도 “갈림길 좌측은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산길인데 은누리가 목적지 200m를 앞두고 오르막을 택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은누리가 제대로 산에서 내려온 뒤 누군가에 의해서 행방불명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양의 아버지 역시 “길 눈도 밝고 되돌아온 길은 꼭 찾아서 돌아가곤 했다. 내암리 냇가는 서너번 온 적이 있어서 하산 도중에 길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양의 실종이 장기화하면서 범죄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수색대는 이미 실종지 인근 지역을 20회 이상 뒤졌다. 예초기와 낫으로 계곡 주변 수풀을 베어냈지만, 조양의 신발, 안경, 소지품 등이 확인된 게 없다. 주민 구모(66)씨는 “실종자가 놀던 냇가 주변에 당일 차량이 여러 대 주차돼 있었다”며 “차가 냇가 옆 공장 직원의 것인지, 실종자 일행과 다른 외지인의 차량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도를 통해 산을 오가는 차량도 종종 있다고 한다.

조은누리양이 혼자 하산한 지점에는 갈림길이 한 곳이 있다. 사진 오른쪽은 무심천 발원지로 올라가는 길, 왼쪽은 조양이 물놀이를 하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이최종권 기자

조은누리양이 혼자 하산한 지점에는 갈림길이 한 곳이 있다. 사진 오른쪽은 무심천 발원지로 올라가는 길, 왼쪽은 조양이 물놀이를 하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이최종권 기자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하고 차량을 추적해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있다. 조양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 이후 3시간 동안 인근 생수 공장을 지나간 차량은 50여 대로 조사됐다. 아직 범죄를 의심할 만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실종 장소를 빠져나간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실족, 범죄 연루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2급인 조양은 실종 당시 회색 상의와 검은색 치마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깨 정도 긴 머리를 묶었고 파란색 안경테를 착용했다. 151㎝ 키에 왼손잡이다. 보통 사람보다 말이 느린 편이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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