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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날 학생 인솔하다 숨진 교장…"순직 인정 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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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연합뉴스]

정년퇴직 날까지 학생 인솔 업무를 하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교장 선생님이 법원에서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법원은 직업공무원제도와 근무조건의 '법정주의'를 엄격히 유지하는 것이 공익상 더 중요하다고 봤다.

법조계에 따르면 3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함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사망한 A씨의 유족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A씨는 2018년 2월 28일이 정년퇴직일이었다. 그러나 같은 달 2월 26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되는 학교 배구부 전지훈련에 담당 교사가 참여할 수 없게 되자 A씨가 코치와 함께 학생들을 인솔해 훈련을 떠났다.

A씨는 28일 전지훈련이 끝난 후 오후 1시 30분쯤 학생들과는 별도로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퇴직일이던 28일 새벽 0시부터 A씨의 공무원 신분이 소멸했으므로, A씨의 사망은 공무상 순직이 아니라며 유족보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A씨의 가족이 소송을 냈으나,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교육공무원법 등 해석상 사고가 난 시점에 A씨가 공무원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 측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퇴직일에 공무로 사망한 것을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평생을 교육에 종사한 이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에 위배되고 국민의 상식에도 반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망인이 헌신적으로 공무를 수행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공무원 신분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더는 '근무조건 법정주의'가 유지될 수 없다"며 "망인의 안타까운 사정보다는 직업공무원제도와 근무조건 법정주의를 유지할 공익이 더 크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A씨가 당한 불의의 사고와는 다른 측면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경우도 고려했어야 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퇴직 이후 학생을 인솔하다가 학생에게 발생한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을 상정해보면, 망인에게 교사로서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의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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