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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반일 넘어 극일로 ‘아름다운 복수’를 준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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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의화 전 국회의장

정의화 전 국회의장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웃사촌 복’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대륙세력인 중국, 유일한 해양세력인 일본이 번갈아 가며 우리를 괴롭혔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우리를 그런 운명으로 몰아간 것일까.

구한말 세계사 못 읽어 수난 당해 #과거사는 잊지도 갇히지도 말자

그러나 우리 자신의 책임도 크다. 구한말에 겪었던 수난은 더욱 그러하다. 당시 집권층은 낡은 사조(思潮)에 갇혀 세계사의 격변을 읽지 못했다. 나라의 부(富)를 늘리는 일도, 국가의 방비를 튼튼히 하는 일도 소홀히 했다. 정치력도, 외교력도, 국방력도 약하니 나라가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치욕스러운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겪어야 했다.

그 아픈 기억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일본에 2012년 말 아베 신조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일 관계는 더 급속히 냉각됐고, 두 나라 국민까지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일본 국민의 혐한(嫌韓) 감정도 상승하고 있다.

중국을 보라. 한반도에서 남북 간에 긴장과 갈등이 발생하면, 중국은 늘 냉정한 대응과 당사자 해결 원칙을 강조한다. 한반도의 안정이 곧 중국의 국익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른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다.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회의장으로 재임하던 2015년 12월 중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베이징에서 만났다. 환담 중에 시 주석은 “(난징 대학살 같은) 사악한 짓을 한 일본을 그냥 둘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받아서 “그래도 어쩌겠느냐,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지만, 시 주석은 넘치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랬던 시 주석이 아베와 손을 잡고 중·일 관계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불과 3년 반 만에 일본의 만행을 잊은 것일까. 이런 것이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고 국익을 위한 외교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일본으로부터 ‘신뢰 없는 국가’라는 어처구니없는 공격을 받고, 중국에는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 이 와중에 러시아까지 우리 독도 영공을 위협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5년 전 필자는 도쿄에서 아베 총리를 만났다. 그때 “일본 내부의 화(和)도 중요하지만, 동북아에서 한·일간 화도 매우 중요하니 신의 속에서 화를 이루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화 문화’를 건국이념으로까지 강조하는 일본의 자성을 촉구하는 뼈있는 말이었다. 당시는 양국 정상 만남조차 어려운 때였다.

당연히 일본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깨끗이 정리해야 할 것이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재임 시절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비석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그 진정성 있는 행동 하나로 폴란드인들의 가슴 속 응어리는 사라졌다. 만약 아베 총리가 한국의 상징적인 곳을 찾아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면 어떨까 싶다.

과거사를 잊을 수는 없지만, 거기에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 한·일은 상호 간 신뢰를 더 굳건히 쌓아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가 할 일은 반일(反日)감정을 앞장서서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극일(克日)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다. 반일 프레임은 국론을 분열시킬 뿐 국익과 한·일 관계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증오를 키워갈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복수’를 준비하자. 우리의 지혜를 모으고 힘을 길러 일본보다 훨씬 경쟁력 있고 매력적인 강국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 더 정의롭고 청렴하며 품격 높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일본을 극복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꽃피우는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