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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가 만드는 루왁커피, 강아지는 못 만들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48)

루왁 커피는 사향고양이(왼쪽)에게 커피 열매(오른쪽)를 먹이고, 그가 배설한 똥에서 원두를 골라내 만든다. 위즐 커피는 사향족제비에게 커피 열매를 먹여서 생산한 원두로 만든다. [사진 중앙포토, pixabay]

루왁 커피는 사향고양이(왼쪽)에게 커피 열매(오른쪽)를 먹이고, 그가 배설한 똥에서 원두를 골라내 만든다. 위즐 커피는 사향족제비에게 커피 열매를 먹여서 생산한 원두로 만든다. [사진 중앙포토, pixabay]

근자에 국제암연구소가 2군 발암물질이라던 커피를 목록에서 삭제했다. 종래의 연구결과가 뒤집혀서다. 이제는 오히려 암을 예방한다는 대접을 받을 정도다. 국내 커피 소비가 폭증했다. 관련 산업이 연 10조원을 상회하고 국민 1인당 하루 한 잔 이상 마신다는 통계다. 무릇 인구대비 대한민국이 세계 최대의 커피 소비국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커피 한 잔에 1천 원짜리가 있는가 하면 2~4만원 하는 것도 있다. 잘 익은 커피체리를 동물에게 먹인 후 바깥쪽 과육은 소화하고 배설되는 씨앗을 골라내 볶아서 만든 소위 '동물똥 커피'의 값이 이렇다. 그래도 호사가 사이에서는 못 마셔서 안달이다.

그 종류에는 3가지가 있다. 인도네시아 등의 사향고양이에게서 얻는 루왁, 베트남의 사향족제비에게서 얻는 위즐, 코끼리에게 얻은 아이보리 커피가 유명하다. 원래는 커피 농장을 드나드는 야생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부터 원두를 골라내 만들었다. 양이 많지 않아 1kg에 200만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들 동물을 가두어 집중적으로 커피 열매를 먹여 대량생산하는 길을 택했다.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다. 케이지에 가둔 채 소화기관을 약하게 하는 유동식을 먹이며 커피 생산을 위한 기계처럼 키웠다. 이렇게 하면 자연수명이 12~15년인 사향고양이가 2~3년이면 죽는다. 동물단체가 그 처참한 실상을 공개하고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돈 되는 물건에 가짜가 없을 리 없다. 사육된 사향고양이에서 채취한 커피에 '야생에서 채취한 자연산'이란 라벨을 붙이기도 한다. 생두를 잠깐 물에 불려 발아시킨 다음 그늘에서 말려 볶아내면 루왁과 상당히 흡사한 풍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간파하고는 짝퉁 루왁을 만들기도 했다.

2014 서울커피엑스포에 전시된 인도네시아산 루왁 커피의 모습. 배설물에서 얻은 커피의 풍미는 소화기관에서 분비되는 효소에 의해 발효돼서 생기거나, 커피 생두가 사료 속 과일 향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중앙포토]

2014 서울커피엑스포에 전시된 인도네시아산 루왁 커피의 모습. 배설물에서 얻은 커피의 풍미는 소화기관에서 분비되는 효소에 의해 발효돼서 생기거나, 커피 생두가 사료 속 과일 향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중앙포토]

그런데 똥 커피 맛이 그렇게 좋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흔하디흔한 커피 농장에서 하필 주위에서 가끔 발견되는 더러운, 하필 사향고양이의 똥 속 원두를 골라내 먹을 생각을 했을까. 정말 신기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동물의 배설물에서 얻은 커피는 왜 풍미가 좋은 걸까? 정확한 학설은 없다. 아마도 동물의 소화기관에서 분비되는 효소에 의해 발효되면서 특유의 향미가 생성되는 것, 또는 커피 생두가 같이 먹은 사료 속 과일 향 등을 끌어들이는 성질 때문이 아닌가로 보고 있다.

그런데 선무당급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골라낸 원두는 구린내가 심할 것 같은데 이 냄새가 오히려 좋은 향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된 것이 아닌가도 싶다. 동물 똥이나 방귀의 독특한 불쾌한 냄새는 아미노산 등이 분해돼 나오는 인돌(indole)과 스카톨(skatole) 등이다. 이 물질은 농도가 진하면 불쾌하게 느껴지나 연하면 아주 좋은 향내로 변한다는 사실.

따라서 원두에 묻은 똥을 어느 정도 씻어내는가가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칠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원두에 배어든 어떤 똥 성분이 볶는 과정에서 여타 성분처럼 기막힌 향미로 변화했든지. 실제 커피 원두 자체는 아무런 맛이 없다.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불쾌한 맛이 나 먹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를 볶으면 고온에서 수많은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수백 가지의 물질이 생성된다. 색깔이 검게 되는(갈변현상) 동시에 쓴맛을 내고 향미가 좋아진다. 참깨를 볶으면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래서 볶는 것(로스팅)을 중히 여긴다.

블랙 아이보리 커피와 전용 커피 추출 기계. 아이보리 커피는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기후와 코끼리가 서식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이 접목된 태국에서 주로 생산한다. [중앙포토]

블랙 아이보리 커피와 전용 커피 추출 기계. 아이보리 커피는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기후와 코끼리가 서식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이 접목된 태국에서 주로 생산한다. [중앙포토]

대량으로 만드는 아이보리 커피, 코끼리 똥에서 골라내는 커피는 사향고양이보다 양이 많아 쌀 것 같으나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당연히 자연에서 채취하는 것도 있겠지만, 대개는 사육 코끼리에게 인공적으로 얻는다. 그냥은 잘 먹지 않으니 커피 열매를 말린 후 사탕수수와 바나나 등을 섞어 코끼리에게 먹여 채취하는 방식이다.

약 33㎏의 커피 열매로부터 1㎏ 정도의 원두를 얻을 수 있단다. 대부분의 열매가 상처 나고 씹혀져 온전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일 게다. 해당 커피는 1㎏에 약 200만원 정도다.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은 약 2만 원 정도 한단다. 최고급으로 치는 루왁과 맛이 비슷하다는 평가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이 누군가? 코끼리로부터 아이보리 커피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신문에 났다). 강원대학교 모 교수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블랙 아이보리 커피, 일명 ‘코끼리똥 커피’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개발한 기술은 기존 방식을 개선해 생산량을 4배로 늘렸고 강원 고성군의 해양심층수 미네랄을 활용해 커피 생두의 품질도 향상했다면서. 과육은 제거한 커피 열매를 말린 후 바나나 등을 섞어 코끼리에게 먹여 얻는 방식이라고 했다. 33㎏에 1kg이던 것을 약 4㎏으로 생산량을 늘렸단다. 말려서 딱딱한 원두를 먹였기 때문에 온전한 것이 많이 남아 있어 수율이 높아진 것이 아닌가도 싶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로 등장하는 에드워드 콜(잭 니컬슨 분)은 루왁 커피를 즐겨 마신다.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로 등장하는 에드워드 콜(잭 니컬슨 분)은 루왁 커피를 즐겨 마신다. [사진 네이버 영화]

그러면 이런 똥 커피는 코끼리나 사향고양이에게만 기능할까. 사람이나 강아지에게는 어떨까. 모르긴 해도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똥으로부터 골라낸 원두는 냄새가 지독하겠지만 세척 정도에 따라 원인물질인 인돌과 스카톨을 씻어내 적당한 농도로 조절하면 기막힌 풍미를 제공할지도 모를 일이다. 단, 씨앗을 씹어 파손하지 않고 과육이 있는 채로 삼켜야 하겠지만.

찾아보니 있다. 별나기로 치면 한국 사람 세계 으뜸 아닌가. 장난기 많은 어느 친구가 커피체리를 집중적으로 먹고 배출되는 원두를 정성껏 모아 씻고 말리고 볶고 하여 스스로 자가제 커피를 만들어 친한 후배에게 먹였다. 낄낄대며 맛있어하는 광경을 유튜브에 유포했다. 이게 혹시나 루왁보다 더 맛있다면 어느 누군가 이제 대량 생산하여 몰래 유통할지도 모를 일이다. 동물 똥으로부터 얻는 것보다 손쉬워서다. 모르고 먹으면 약이라 했다.

2007년에 개봉된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 잭 니컬슨이 죽기 전에 마시고 싶은 음료로 '루왁 커피'를 꼽고 나서 똥 커피가 유명해졌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는 2009년 7월 신라호텔이 처음 판매를 시작했다. 2011년 강남의 모 카페에서는 100% 루왁 커피를 한 잔에 4만원에 팔았다. 지금은 어디서 파는지 모르지만 나도 한번 마셔보고 싶다. 너무 비싸긴 해도.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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