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한복판 “채식 반대” 외치며 다람쥐 사체 먹은 남성…불붙은 ‘채식 혐오’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19.07.30 05:00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채식 반대”를 외치며 다람쥐의 사체를 먹은 남성 두 명에게 공공질서 위반에 따른 벌금형이 24일(현지시간) 선고됐다.

런던 소호거리 채식 노점상 앞에서
털 붙은 다람쥐 사체 생으로 뜯어먹어
"채식주의 위험성 알리고 싶었다" 항변
法, 공공질서 위반했다며 벌금형 선고

런던 소호 거리의 비건(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 일체를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형태의 채식주의) 노점상 옆에서 “채식은 인간에게 잔인하다”고 외치며 털이 붙어있는 상태로 숨이 끊어진 다람쥐를 먹은 남성 2명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4일 보도했다.

지난 3월 30일 라트비아 출신의 게티스 라그즈딘스가 영국 런던의 번화가인 소호 거리에서 채식주의에 반대한다며 다람쥐 사체를 먹고 있는 모습. [텔레그레프 캡처]

지난 3월 30일 라트비아 출신의 게티스 라그즈딘스가 영국 런던의 번화가인 소호 거리에서 채식주의에 반대한다며 다람쥐 사체를 먹고 있는 모습. [텔레그레프 캡처]

가디언에 따르면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 출신의 데니지 크렙니코브(22)와 게티스 라그즈딘스(29)는 지난 3월 30일 런던의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소호 거리의 채식 시장에서 수십 명의 행인이 보는 가운데 “채식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알리겠다”는 이유로 죽은 다람쥐를 먹은 혐의로 지난 24일 런던 치안법원에서 공공질서 위반 유죄 판결과 함께 400파운드(약 58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런던 검찰은 “피고인들은 ‘엄격한 채식은 영양실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소호 거리 한복판에서 요리하지 않은, 털이 붙어있는 다람쥐 고기를 생으로 먹는 것은 역겹고 불필요한 일이었다”며 “그들이 불특정 다수의 행인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이 행동을 계획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22일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를 목격한 행인 중에는 어린이들도 있었으며, 아이의 부모가 “그만하라”고 소리쳤지만 이들은 엽기 행각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영국 인터넷 매체 인디펜던트는 문제의 행위가 벌어지던 당시 목격자 중 한 명이 “왜 굳이 날것의 죽은 다람쥐를 먹어야 하냐”고 묻자 라그즈딘스가 “요리를 하게 되면 영양분이 줄어든다”는 답을 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최근 서구에서는 채식주의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런 여론은 성소수자, 여성,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고 이들에 대한 편견을 배척하자는 취지의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주의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한마디로 동물권과 환경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채식주의자들로부터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동물 보호 NGO를 인용해 “몇몇 연구에 따르면 비건들은 동성애자, 이민자, 무신론자들보다 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비건들보다 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이들은 마약중독자뿐”이라고 지난해 11월 전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비건 공포증’이 생기는 이유로 “비건들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며, 육식은 잘못됐다는 인식을 퍼뜨려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지난 15일 뉴질랜드의 한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서는 채식주의 운동가들이 판매용 소고기에 "소는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유제품은 끔찍하다" 등 육식 반대 문구를 담은 스티커를 붙이는 사건이 있었다. 사진 속 스티커에는 "이 패키지는 죽음을 원치 않았던 동물의 몸이다"고 쓰여있다. [TVNZ 캡처]

지난 15일 뉴질랜드의 한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서는 채식주의 운동가들이 판매용 소고기에 "소는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유제품은 끔찍하다" 등 육식 반대 문구를 담은 스티커를 붙이는 사건이 있었다. 사진 속 스티커에는 "이 패키지는 죽음을 원치 않았던 동물의 몸이다"고 쓰여있다. [TVNZ 캡처]

극단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반(反)채식주의’ 뿐만이 아니다. 채식주의 운동 역시 다소 과격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지난 15일 채식주의 운동가들이 북섬의 한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 진열된 판매용 소고기에 “유제품은 끔찍하다” “소는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등 육식에 반대하는 내용의 스티커를 붙이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영업 방해 및 절도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뉴질랜드 비건 협회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절도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지나쳤다”며 “아무것도 도난당한 것이 없으며 스티커는 쉽게 벗길 수 있는 것을 썼다”고 해명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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