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日유명작가 "한국 강제징용 판결 너무나 당연" 아베 정면비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의 탈핵전문가이자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오른쪽)가 2016년 한국을 방문해 국회에서 열린 '지진대 위의 핵발전소! 그 위험성 진단과 대책'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일본의 탈핵전문가이자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오른쪽)가 2016년 한국을 방문해 국회에서 열린 '지진대 위의 핵발전소! 그 위험성 진단과 대책'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조선인 강제징용은 나치 홀로코스트에 버금가는 일이다. 일본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 판결은 너무나 당연하다."
일본의 저명한 탈핵(脫核) 전문가이자,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広瀬隆·76)씨가 최근 한일 간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강제징용 배상문제에 대해 이같이 주장했다. 지난 24일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아사히(週刊朝日)'에 게재한 온라인 칼럼을 통해서다.
그는 칼럼에서 "일제가 저지른 조선인 강제징용은 노예제에 해당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보낸 것에 버금가는 일"이라 규정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때 강제징용 배상문제 등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아베 정권의 주장에 대해서도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탈핵전문가 히로세 다카시, 슈칸아사히 칼럼 #"일제 강제징용, 나치 홀로코스트 버금가는 일" #"한일협정때 준 돈은 경제협력자금, 배상금 아냐" #"아베 정권 비판해야할 日방송, 되려 한국 비판"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강제징용된 조선인이 일본 하시마섬의 해저탄광에서 목숨을 건 노역을 하고 있다. [영화사 제공]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강제징용된 조선인이 일본 하시마섬의 해저탄광에서 목숨을 건 노역을 하고 있다. [영화사 제공]

히로세 씨는 "1965년 일본이 한국에 준 돈은 경제협력 자금이지, (강제징용 등에 대한) 배상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협정에 의해 한국에 지불한 돈은 경제협력 자금이다"(시이나 에쓰사부로 전 외상)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킨 건 아니다"(야나이 슌지 전 외무성 조약국장) 등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아베 정권이 일본기업에 (강제징용) 배상금을 내지 말라고 지시했고, 이를 비판해야할 일본 방송들이 오히려 한국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개인 보상을 정하지 않은 채,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을 체결한 박정희 대통령 또한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칼럼 중 강제징용 배상 관련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일본인에 의해 강제연행돼 노역을 강요당한 조선인(현재의 한국인)에 대해, 한국 대법원(최고 재판소)이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것을 구실삼아 일본 방송들이 "한일 국교 정상화 때 일본이 한국에 돈을 주지 않았나"라는 톤으로 일제히 한국의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왜일까,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도 있으므로 설명한다.
전쟁 후에 이뤄진 한일 국교정상화 라는 외교 사업은 1965년 6월 22일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되고, 일본이 한국에 경제협력자금을 주면서 35년의 긴 세월에 걸쳐 조선을 식민지배한 것을 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식민지배 시기에 일본은 70만명 이상의 조선인을 주로 농촌에서 강제로 납치해 탄광·금속광산 채굴, 도로·터널 건설의 토건업, 철강업 등의 중노동에 내몰고도, 큰 피해를 당해 인생이 망가진 조선인 노동자 개인에 대해 현재까지 전혀 배상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 조약이 정한 강제노동, 1926년의 노예조약에 기술돼있는 노예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대한 인권침해였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보낸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일을 일본인이 조선인을 상대로 한 것이다.
엄청난 수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고령이 되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지만, 피해자가 일본 기업에 배상을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했을 때 일본 외상이었던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悦三郎)는 1965년 11월 19일 국회에서 "협정에 의해 한국에 지불한 돈은 경제협력의 차원으로, 한국경제의 번영을 기원하고, 또 새로운 국가의 출발을 축하한다는 점에서 이 경제협력을 인정한 것입니다"라고 말해, 배상이 아닌 '독립 축하금'이었다고 밝혔다.
1965년의 협정 자체가 (강제징용) 손해 배상과 무관한 것은 1991년 8월 27일 외무성 조약국장이었던 야나이 슌지(柳井俊二)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일 기본조약의 청구권 협정에 대해 "이른바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킨 건 아니다"라고 밝혔기에, 한국 대법원 판결이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고노 다로 외상이 일본 기업에 배상금을 내지 말라고 지시해온 것이다. 이를 이상하다(비정상적이다)고 비판해야 할 일본의 방송들이 되려 앞장서서 한국 비판을 시작했다.
이런 이상한 흐름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개인 보상을 정하지 않은 채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을 체결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반대세력을 모두 투옥한 사람이었다는 역사를 일본 방송들이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