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추경안 역대 두 번째 96일 표류…여야 싸움에 경제 식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9.07.2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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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나라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요즘 ‘곡소리’가 난다. 일이 바빠서라기보다 일을 할 수 없어서다. 매년 7~8월은 내년도 예산안을 짜느라 바쁠 때지만 최근엔 여의도 국회만 바라본다. 기재부 실·국장 등 고위 관료는 정부세종청사 대신 국회를 방문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제발 통과시켜 달라”고 읍소하느라 바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월 25일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이 여야 정쟁에 발이 묶여 96일째 감감무소식이다.

정부·민주당은 야당 탓만 하고
한국당, 정치이슈 엮어 발목잡아

2000년(107일) 이후 역대 최장 표류 중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윤후덕 의원은 2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경안을 이달 말 통과시켜 다음달부터 집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추경안의 국회 처리를 계속 뭉개고 있다. 효과 없는, 선심성·관행적 추경이란 이유를 들어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당장 예비비를 활용해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데도 백지수표 추경안을 들이밀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딱히 대안을 내는 것도 아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북한 목선 사건 국정조사 등 정치 이슈와 추경안 처리를 연계해 협상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한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회에서 추경안을 협상 카드로 쓰는 건 관행”이라며 “야당으로서 추경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발목잡기를 자인하는 소리로 들렸다. 야당의 반대와 비판은 상수(常數)다. 결국 여당이 정치력을 발휘해 풀어야 하지만 ‘유연한 자세’ ‘대승적 결단’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를 살리는 일차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는데도 남 탓만 하는 모양새다. 그러는 사이 추경안 처리는 하릴없이 꼬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안이 요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예산을 깎으면 된다”며 “국회에서 심사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추경이라도’ 해야 하는 비상상황이란 데는 당·정·청이 공감한다. 국회는 ‘무조건 보이콧’ 대신 일단 추경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꼼꼼히 따져야 한다. 비록 누더기, 반쪽짜리더라도 일본의 조치에 대응하는 예산까지 포함한 추경을 처리한다면 우리 국회의 단결된 메시지를 일본에 전하는 또 하나의 대응 카드가 되지 않을까. 정부가 ‘이순신’과 ‘서희’를 들먹이며 일본과 다투는 마당에 여야가 벌이는 정쟁이 한가로워 보여서 하는 얘기다.

김기환·윤성민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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