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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앞날 알 수 있나···"인생 살아볼 만한 힘 주는게 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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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뛰는 말게라고 채질을 하는 거 겉으니까
아주 그러나 저러나 내가 잠깐 놀고
아 잘 지키면서 손큰 놈 범이 도둑 도둑실물
썩 물리치시고 어진 손님들 아주 우리 단골들은
부자되서 장관단골 고관단골 갑부단골 아주 뭐 원풀고 한풀어
잘 내가 도와가야겠지?
그럼 인제부터 들어가서 잘 놀아봐야겠네”

[눕터뷰] 만신(萬神) 민혜경

황해도 지역의 대표 굿인 만구대탁굿의 ‘터주대감거리’중 한 대목이다.

황해도무형문화재 제1호 만구대탁굿 전수교육조교 민혜경 만신이 굿판에 쓰이는 무복, 신구(神具)들과 함께 누웠다. 장진영 기자

황해도무형문화재 제1호 만구대탁굿 전수교육조교 민혜경 만신이 굿판에 쓰이는 무복, 신구(神具)들과 함께 누웠다. 장진영 기자

굿과 무당은 미신으로 여겨지며 오랜 시간 천대를 받아왔다. 일제강점기와 6.25,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무당들은 고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굿은 삶과 죽음을 잇는 한 판의 축제다. 하늘 문을 열어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고 얽히고설킨 원한을 풀어 함께 살아가자는 염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굿은 개인과 마을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다.

마을 주민들이 주관하는 대동굿과 달리 만구대탁굿(만구대택의 변음)은 무당 자신의 경력과 재력에 의해 주관된다. 큰 무당만이 할 수 있는 굿으로서 평생 세 번 하면 많이 할 정도의 큰 규모로 펼쳐진다. 만물이 생성하는 봄이나 햇곡식을 거두는 가을에 주로 치러진다.

민혜경 만신이 신당에서 마지환(황해도식 탱화) 앞에 섰다. 장진영 기자

민혜경 만신이 신당에서 마지환(황해도식 탱화) 앞에 섰다. 장진영 기자

민혜경(52) 만신은 만구대탁굿의 전수교육조교(보유자 전 단계)다. 지난 18일 만구대탁굿 전수 교육기관인 경기도 양주 해동굿문화센터에서 민 만신을 만나 그가 무당이 된 사연, 그가 생각하는 굿의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단칸방에서 밥상에 촛대 두 개 올려놓고 점을 보기 시작했어. 신내림이 뭔지도 몰라서 내림굿도 받지 않은 상태였지. 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신기해서 그저 영이 떠오르는 대로 말해줬었지”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진행된 '이 땅의 굿, 굿도 보고 점도 치고'에서 굿하는 민혜경 만신.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진행된 '이 땅의 굿, 굿도 보고 점도 치고'에서 굿하는 민혜경 만신.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민혜경에게는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장면’과 ‘소리’가 들리곤 했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하늘로 가는 날을 알게 되어 지인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주기도 했다.

민혜경 만신은 "무당으로서 서러운 날도 많았지만 내가 쓰임이 있으니 신께서 그렇게 고생시켰을거다"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민혜경 만신은 "무당으로서 서러운 날도 많았지만 내가 쓰임이 있으니 신께서 그렇게 고생시켰을거다"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무병인 걸 직감했는지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가게 했어” 민혜경의 증조 외할아버지는 나라굿을 하는 큰 무당이었다. 외할머니도 대외적으로 나서진 않으셨지만, 집에 신당을 차렸었다. 어머니는 신내림을 피하기 위해 일찍 결혼해 민혜경을 낳았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보내려고 하셨어. 눈을 감기 전까지 널 이렇게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린다 하셨지”

어머니의 장례 후 경기도 광주로 취업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우연히 한 동네에 내렸다. 무엇인가 이끄는 기분에 작은 단칸방을 하나 얻고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촛대가 올려진 상을 향해 계속 기도를 했다.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 년 가까이 하혈이 끊이질 않았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심한 무병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박수 무당을 찾았다. “너는 큰 무당이 될 거고, 시집 못 갈 거고, 자식도 없을 거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신이 이미 들어와 있다”라며 자신의 신어머니를 소개해줬다. 바로 이옥희 만신이다. 민혜경은 그길로 내림굿을 받고 ‘제대로’ 무당이 되었다.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진행된 '이 땅의 굿, 굿도 보고 점도 치고'에서 굿하는 민혜경 만신.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진행된 '이 땅의 굿, 굿도 보고 점도 치고'에서 굿하는 민혜경 만신.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신어머니(이옥희 만신)를 만나고 삶이 180도 달라졌어. 황해도 만구대탁굿을 접하게 됐지. 내 무당으로서의 운명이 시작된 거야”

이옥희 만신을 통해 황해도 굿의 모든 것을 배웠다. 정안수 따르고 촛불 켜는 순서부터 굿에 쓰이는 동쪽으로 뻗은 소나무 가지, 개살구 등도 구해야 했다. 하늘거리는 손짓과 나비 같은 춤사위도 익혔다. 각 지역에서 열리는 큰 굿판을 다 돌았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한 달 넘게 굿판을 이어간 적도 있었다. “예전에는 큰 굿판에 난다긴다하는 무당들이 다 모였어. 며칠씩 벌어지는 굿판에 한 거리씩 품앗이하며 돌아가면서 굿을 했어” 굿판에서 신구(神具)와 음식을 나르며 온몸으로 굿을 배워갔다.

무당으로서도 잘나갔다. 점을 보려는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돈, 쌀, 농산물 등 복채로 받은 것들이 넘쳐났다. 가족들과도 다시 합쳤고 어린 동생들을 키워냈다. “그렇지만 아직 서른 살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점을 안 봤어. 자신이 경험하고 부대끼는 것들이 온전한 내 것이 되는 거고 점이란 내 것을 지키기 위한 길흉화복을 점치는 거야. 서른살 이전에는 장착하고 있는 것이 없으니 볼 것도 없지”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진행된 '이 땅의 굿, 굿도 보고 점도 치고'에서 굿하는 민혜경 만신.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진행된 '이 땅의 굿, 굿도 보고 점도 치고'에서 굿하는 민혜경 만신.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그렇지만 ‘무당’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건 힘들었다. “신을 원망한 적도 있었어. '무당이 아니었다면...' 하고 삶에 질문만 던졌었지. 돌이켜보면 스스로가 무당인 된 걸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 자부심 없이 본능에 따라 살았던 거지. 삶에 발목 잡힌 듯 답답해하면서” 몰라도 되는 것까지 알게 되는 것에 괴롭고 화가 났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운명이기에 그만둘 수 없었다.

무당으로서의 권태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계기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엔 의심이 많으셨어. 신당 앞에 손님인 척하고 앉아있다가 점 보고 나오는 사람들한테 ‘저 여자 사기 치는 것 같지 않아요?’라고 하시기도 했지. 근데 내가 성실하게 하는 걸 보시고는 그때부턴 내 비서가 되어주셨어. 아버지 유언이 ‘이왕 하는 거 나라를 대표하는 무당이 되라’고 하셨어. 나이 먹고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아버지가 실망하실 거 같았어. 장례식에서 맹세했지. ‘지금부터 진짜 잘하고 큰 무당이 될 테니 걱정하지 말고 편히 가쇼’라고”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진행된 '이 땅의 굿, 굿도 보고 점도 치고'에서 굿하는 민혜경 만신.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진행된 '이 땅의 굿, 굿도 보고 점도 치고'에서 굿하는 민혜경 만신.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그때부터 마음을 편하게 먹고 굿판에 섰다. 알고는 있었지만 해본 적 없던 몸짓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무당을 받아들었더니 주변에서 만신이라고 부르더라고. 평범한 여자들의 삶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낀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피의 온도가 적당해진 시기인 것 같아. 그렇기에 삶에 대한 두려움보단 만신으로 살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지난 2016년에는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1호 만구대탁굿 전수교육조교’가 되었다. 그간 굿판에서 보여준 실력, 주변의 추천, 선발전 등을 거친 결과였다.

무복에 입는 상산의대와 백학홍대. 이것들은 경험이 많은 무당일수록 굿하는 중에 흘러내리지 않는다. 장진영 기자

무복에 입는 상산의대와 백학홍대. 이것들은 경험이 많은 무당일수록 굿하는 중에 흘러내리지 않는다. 장진영 기자

황해도 굿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도 시작했다. “신어머니와 동기 선생님들이 연로하셔서 굿판에 서기 힘들어지셨어. 내가 ‘제대로’ 배웠으니,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결심했지. 지금도 큰 굿판을 앞두고는 열심히 공부해” 1년에 한 번씩 만구대탁굿 발표회를 열고 지역축제 무대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 설에는 한국의 집에서 여러 무당과 합동공연을 했는데 관객들이 콘서트 보듯이 즐거워하더라고”

민혜경 만신은 41살이 되던 해에 기도를 올리던 중 "시집 보내주랴"라는 공수(신이 전하는 말)를 들었다고 한다. 주로 큰 무당들의 굿에서 장구를 치던 이동균 악사를 만나 46살에 결혼했다. 이동균 악사도 만구대탁굿 악사 전수교육조교다.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민혜경 만신은 41살이 되던 해에 기도를 올리던 중 "시집 보내주랴"라는 공수(신이 전하는 말)를 들었다고 한다. 주로 큰 무당들의 굿에서 장구를 치던 이동균 악사를 만나 46살에 결혼했다. 이동균 악사도 만구대탁굿 악사 전수교육조교다. [사진 해동굿문화센터]

무당도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을까? “앞으로 20년간은 고생할 거야. 한 인간으로, 영적인 느낌 둘 다 그런 예상이야. 욕도 먹고 박수도 받으면서. 내가 했던 경험들은 훗날 무언가를 위한 거라 생각해. 고생할 힘을 가졌으니 당당하게 고생하자고 결심했어. 무당에 대한 편견을 깨고, 만구대탁굿을 알리는 선두주자가 될 거야" 그는 샤먼의 가치와 보존의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민혜경 만신은 치유의 마음을 건네주는 무당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민혜경 만신은 치유의 마음을 건네주는 무당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민혜경은 만구대탁굿에는 사람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굿거리에 상대방의 애환을 끌어들이고 잘될 거야 하면서 돌려주는 거지.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편한 잠을 자고 편한 밥을 먹으라는 축원을 주는 거야. 인생 살아볼 만한 힘을 주고 기도해주는 것. 그 치유의 마음을 건네주는 게 무당의 역할이야”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동영상 해동굿문화센터], 도움말 양종승 샤머니즘박물관 관장

만구대탁굿은...

영화 ‘만신’의 실제 주인공인 김금화 만신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고 지난 2005년 황해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시대순으로 김기백·우옥주·정학봉·김계순 만신을 통해 전승되어왔다. 보통 다른 굿들이 12거리(1거리는 한판의 굿)나 그의 배수인 24거리로 짜여 있는데 만구대탁굿은 이것을 안팎으로 진행한다. 이런 형식의 굿을 ‘겹굿’이라고 한다. 전승 계보 또는 펼쳐지는 형식에 따라 거리 수가 조금 달라질 수 있고 보통 40~48거리 사이다. 1거리가 보통 4~5시간 진행되는 것을 고려하면 만수대탁굿 모두를 소화하는데 일주일 정도가 걸리기도 한다. 굿에는 마을의 수호신을 대접하는 ‘산천거리’, 한 집안의 길흉과 재물복을 관장하는 성주신을 대접하는 ‘성주거리’, 조상님의 극랑왕생을 기원하는 ‘조상거리’, 무당이 액을 물리고 복을 기원하는 작두를 타는 ‘장군거리’, 잡신들을 풀어먹여 보내는 ‘마당거리’ 등으로 구성된다. 만구대탁굿의 목적은 만(萬) 신령(神靈)을 모시는 만신(萬神) 자신이 만신령을 대접하면서 자신의 만 가족을 위시한 만 제자와 만 단골(무당을 찾는 이들)의 만 가지 구설수와 만 가지 액(厄)을 막고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이 굿을 만대탁굿 또는 만수대탁굿이라고도 하지만 원래의 이름은 만구대탁굿이다.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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