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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한국 버릇없는 꼬마"라고?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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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주전장' 한 장면. [사진 시네마달]

다큐 '주전장' 한 장면. [사진 시네마달]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에요.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엽지 않나요?”  

일본 극우파의 핵심 멤버 카세 히데아키(‘일본회의’ 대표위원)는 영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25일 개봉한 ‘주전장(主戰場)’엔 이처럼 듣는 순간 ‘피꺼솟’인 대사가 연이어 등장한다. 하지만 걱정은 접어두자. 이 영민한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에 대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모순을 까발리는 방법을 택했다. 반론을 섬세하게 제시한 뒤 ‘자, 너의 생각은 어때?’라고 관객에게 묻는다. 도대체 일본은 왜 저러는 거야? 계속 의문이었다면 이 영화를 보라. 두 번 보시라.

이런 사람에게 추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원한다면
아베 정부의 행동 원리를 알고 싶다면

이런 사람에겐 비추
한일관계나 역사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두 시간 동안 이어지는 치열한 논리 싸움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면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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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감독의 안전을 염려한다.” 

다큐 '주전장'에 출연한 일본 우파 논객들. 왼쪽부터 역사수정주의의 대표학자 후지오카 노부카츠, 스기타 미오 자민당 중의원, 미국 변호사이자 일본 방송인 켄트 길버트, 후지키 슌이치 매니저와 그가 맡고 있는 친일 미국인 유튜버 토니 마라노. [사진 시네마달]

다큐 '주전장'에 출연한 일본 우파 논객들. 왼쪽부터 역사수정주의의 대표학자 후지오카 노부카츠, 스기타 미오 자민당 중의원, 미국 변호사이자 일본 방송인 켄트 길버트, 후지키 슌이치 매니저와 그가 맡고 있는 친일 미국인 유튜버 토니 마라노. [사진 시네마달]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다큐를 만든 미키 데자키 감독은 198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2세다. 그는 2007년부터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일본 내 차별 문제를 다룬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곧, ‘일본을 떠나라’는 극우파의 공격이 시작됐다.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의 정체를 추적하던 중, 그동안 잘 몰랐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닿게 된다. 이 문제를 파헤치거나 연구했던 여러 사람들이 자신처럼 극우파의 맹폭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겨났다.

‘위안부’ 문제는 아베와 일본 우익들에게 왜 이토록 중요한가.  

그래서 직접 만났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그 지지단체ㆍ학자에서 시작해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 축소하는 일본 자민당 의원, 극우 여성단체 나데시코 액션의 멤버, 미국 내 소녀상 반대를 주도하는 친일파 미국인까지…. 그렇게 인터뷰한 30여 명의 주장을 숨가쁜 교차 편집으로 담아냈다.

포인트 하나.  ‘성노예’ ‘강제징집’ ‘20만명’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면 이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을 이 세 가지로 정리하고 엇갈리는 주장의 근거를 인터뷰와 사료를 바탕으로 제시한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닌 매춘부다”라는 주장과 “자유를 빼앗긴 채 지속적으로 강간당했으니 성노예가 맞다”는 대립된 의견은 국제법 체제 하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 징집의 ‘강제’란 무엇일까, ‘일본군 위안부 20만명’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나왔는가 등이다.

포인트 둘. '야스쿠니 역사관'이란 

다큐 '주전장'의 한 장면. [사진 시네마달]

다큐 '주전장'의 한 장면. [사진 시네마달]

영화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계속 사과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야스쿠니 역사관’을 제시한다. 위안부 문제가 이슈화된 1990년대 초반,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조사와 함께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집권한 아베 정부와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고노 담화’를 부정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교과서에 실린 위안부 관련 내용을 없애려 한다. 그 결과 1997년에는 모든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위안부 관련 내용이 2012년에는 모두 사라진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이 ‘야스쿠니 역사관’이다. 영화에 따르면 태평양 전쟁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A급 전범들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정신은 “일본 제국은 항상 옳다. 제2차 세계대전과 아시아 태평양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로 요약된다. 당연히 이 역사관 하에서 일본의 오점인 위안부 문제는 인정할 수 없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이듬 해인 2013년 “선거 공약을 지키겠다”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포인트 셋. ‘일본회의’의 실체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다. 바로 아베 정부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자 ‘정치적 브레인’ 역할까지 하고 있는 ‘일본회의’라는 단체에 대해서다. 1997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라는 우익단체가 통합해 만들어진 일본회의는 회원수가 4만 명에 달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극우 단체. 일본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가 쓴 책 『일본회의의 정체』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물론이고 2014년 출범한 아베 2차 내각 각료 19명 중 15명이 이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정치인들의 모임인 일본회의 의원연맹 소속이었다.

일본회의가 추구하는 목표는 요약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으로 돌아가자’다. 이들이 강조하는 주제는 ①일왕, 왕실의 수호와 숭배 ②현행 헌법과 그로 상징되는 전후 체제의 타파(헌법 개정) ③애국 교육 추진 ④전통적인 가족관의 고집 ⑤자학적인 역사관 부정 등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일본 정치의 중심에 있으니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는 게 감독의 주장이다.

포인트 넷. 미국의 역할은?

2014년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지인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사진 시네마달]

2014년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지인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사진 시네마달]

마지막으로 감독은 현재의 ‘이런’ 일본을 만들어낸 배후로 미국을 지목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에 대응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범들을 다시 정치 무대로 끌어들였다. 이들을 통해 일본의 재무장을 독려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일본이 만들어졌다. 영화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A급 전범 혐의자로 수감 중이던 기시 노부스케를 석방해 총리로 만들었다. 그 기시 총리의 외손자가 현재 아베 총리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역시 미국의 한일관계 개선 압박에 따라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다뤄질 수 없었다. 데자키 감독은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배경도 놀랄 만큼 비슷하다”고 영화를 통해 지적한다.

“재판극 같은 스릴이 있다”

2시간 동안 이어지는 치열한 논리싸움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특히 일본 극우파들이 펼치는 궤변과 자충수에는 분노와 함께 헛웃음도 터진다. “정직한 일본인들은 학교에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배운다. 반면 속임수가 판치는 나라인 한국·중국의 학생들은 ‘속지 말라’고 배우지 않느냐” 등 처참한 지적 수준을 드러내는 주장이 난무한다. 자신들도 민망했던 것일까. 영화에 출연한 보수논객 3인은 지난 4월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상영중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특히 시종일관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태도를 잃지 않던 감독이 마지막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과 함께 이런 결론을 내릴 땐,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이 전해진다.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것은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며 그것은 언젠가 그분들의 정의가 구현되는 ‘희망’을 뜻한다. 또한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과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한다.”


제목  주전장(Shusenjo : The Main Battleground of Comfort Women Issue)
연출  미키 데자키
등급  전체관람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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